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정해 놓은 순서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도 누군가 자신을 부르면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손이 내밀어지면 이유를 묻기 전에 잡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신 것도 바로 그 단순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다가오자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가로막았고 어른들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시대에 흔한 모습이었기에 누구도 이상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당연함을 아프게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라 막지 말라” 하셨는데, 그 말은 단순한 허용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어떤 마음에 열리는지를 드러낸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산보다 신뢰에 먼저 열린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세상을 배우는 일인 동시에 자신을 지키는 법을 익혀 가는 과정입니다. 상처를 피하는 감각이 생기고 실수를 줄이려는 기술이 늘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게 됩니다. 신앙도 그렇게 굳어 갑니다. 기도하기 전에 결말을 가늠하고, 순종하기 전에 손익을 따져 봅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에 멈춰 서게 됩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아니면 신앙이라는 안전한 틀 안에 나를 숨기고 있는가.’ 예수님이 아이들을 부르실 때 건드리신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는 마음, 아무것도 쌓이지 않은 마음. 그런데 그 마음에 하나님이 먼저 빛을 비추시는 단순한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빛은 준비된 마음이 아니라 비어 있는 마음에 먼저 비춥니다. 아이의 마음은 설명을 늦게 세웁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의미보다 온기를 먼저 느끼고, 손이 내밀어지면 일단 잡고 나서 어디로 가는지 묻습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이유보다 존재를 먼저 느낍니다.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설명의 정확함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사랑의 크기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믿을 이유를 모두 알지 못해도 먼저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을 보셨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만나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고 먼저 부르고 먼저 안아 주십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이유를 다 말하지 못해도 기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진실을 말보다 삶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한 자가 아닌 기대는 자를 기뻐하신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이 단순함을 잃어버립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자유로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조심스럽고 더 경직될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마음의 대화가 아니라 정돈된 문장이 되어야 할 것 같고, 예배에서는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의식합니다. 마음속에서 울고 싶은 순간이 와도 어른답게 참으려 하고 감정은 눌러 버립니다. 그렇게 신앙은 살아 있는 체험에서 머릿속 개념으로 옮겨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굳어 가는 어른보다 깨어 있는 아이에게 더 가깝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말에도 쉽게 흔들리고 사소한 상황에도 금세 두려워합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혼자 버티려 하지 않습니다. 품을 찾고 손을 찾고 이름을 부르며 도움을 구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모습을 하나님 나라의 그림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강한 척 버티지 않고 도움을 구할 줄 아는 마음, 스스로 지키는 대신 하나님께 기댈 줄 아는 마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기뻐하시지 않고 기대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아이들은 예수님께 걸어갈 때 자신들이 어떤 장면 안에 있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막던 손이 비켜 나갔고, 따뜻한 눈빛이 자신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입니다. 아이들의 눈에는 단순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깊었습니다. 그 발걸음을 가로막던 손이 사람들의 마음을 막아 온 벽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쌓아 온 자존심과 지식과 습관이 제자들의 손처럼 하나님을 향한 길에서 벽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그 벽을 치우셨습니다. 그리고 품에 안아 주시며 하나님이 누구를 기쁘게 받으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잃어버린 것은 단순함이 아닌 기대는 능력
오늘 우리의 신앙 안에도 그 장면은 반복됩니다. 믿음이 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판단받고, 삶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뒤편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눈물로 예배하면 성숙하지 못하다고 여겨지고 질문이 많으면 순종이 부족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분위기.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가 보면 하나님은 전혀 다른 지점을 보고 계십니다. 높은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사람보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울 수 있는 사람, 도움을 구할 줄 아는 사람. 그 마음에 하나님 나라는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평가보다 한 사람의 숨겨진 눈물에 더 귀 기울이십니다.
기도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상황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 주신 기도는 아이의 품 안에서 시작됩니다. 아이처럼 긴장을 풀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받아 주시는 품에서 숨을 고르면 이미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해를 모두 확인한 뒤에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품어 주시고 그 안에서 길을 보여 주시는 분입니다. 순종도 계획을 모두 설명받은 뒤에 하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 하나를 붙잡고 손을 잡고 한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아이의 한 걸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대는 능력입니다. 상처를 지나며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익혔지만, 그러는 사이 하나님께도 기대지 못하는 마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아이들을 안아 주신 장면을 떠올려 보면, 하나님은 그 껍질을 깨뜨리고 싶어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여전히 숨 쉬는 진짜 마음을 깨우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용히 묻고 계십니다. “너는 아직 나에게 울 수 있느냐, 너는 아직 나에게 기댈 수 있느냐, 너는 아직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 그 질문에 작게라도 대답할 수 있다면 하나님 나라는 이미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성숙은 더 높이 오르는 일이 아니라 다시 쉬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괜찮은 어른이 되려는 부담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나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 하나에 자신을 맡기면 믿음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계속되는 초대입니다. 계산보다 신뢰를 먼저 붙들고, 두려움보다 사랑을 먼저 선택하고, 강한 척하지 말고 솔직한 마음으로 걸어오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아주 작은 응답이라도 드리는 순간 하늘나라는 이미 그 마음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매일말씀저널 |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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