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예배당의 육중한 나무 문을 밀고 들어설 때 마주하는 특유의 침묵이 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 냄새와 낡은 장의자에서 배어 나오는 묵직한 향기. 그 고요한 심연 속에 잠길 때면, 우리는 으레 ‘은혜’라는 것을 삶의 비루함을 덮어주는 포근한 담요 정도로 기대하곤 한다. 세상살이에 베인 상처를 어루만져 줄 안식처, 혹은 결핍된 내면을 채워주는 정서적 진통제.
성경의 페이지를 넘기며 마주하게 되는 복음의 원형은 거대한 충돌에 가깝다. 한 존재의 지반을 흔드는 파격 말이다.
성경이 증언하는 은혜의 역사는 인간의 예측을 불허하는 방식으로 침입한다.
다메섹의 정오, 사울을 덮친 것은 시신경을 마비시킬 듯 압도적인 빛의 폭포였다. 그는 말 위에서 곤두박질쳤다. 입안 가득 거친 모래알이 씹히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암흑 속에서 짐승처럼 바닥을 기어야 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는 자부심,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율법적 의로움이 단 한 순간에 휴지 조각이 되어 흩어지는 붕괴의 현장.
그가 처음 맛본 구원의 실체는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이었다. 영적 상승을 기대했던 한 인간에게 찾아온 철저한 무너짐이었다.
우리는 삶의 질서가 흐트러질 때 본능적인 공포를 느낀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사회적 지위가 위태로워질 때를 떠올려보자. 나를 향해 웃어주던 동료들의 시선이 싸늘한 외면으로 바뀌고, 휴대전화가 침묵하는 그 적막한 시간.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 규정하며 하나님의 부재를 의심한다.
영적인 시선으로 이 폐허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이 무너짐이야말로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징후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비대한 자아가 주인 자리를 차지하고 똬리를 틀고 있는 방에는, 타자이신 하나님이 개입할 틈이 없다. 발 디딜 틈 없이 가구로 꽉 찬 방에 새로운 주인이 들어설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의 힘이 완전히 소진되어 더는 저항할 수 없는 상태, 내 존재의 바닥이 드러나는 그 황량한 폐허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 열린다.
인간의 본성과 충돌하는 이러한 구원의 방식은 낯설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예수가 세상에 평화가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 선언했을 때, 그 검은 영혼 깊숙이 눌어붙은 위선과 욕망을 예리하게 분리해내는 영적인 도구다. 마치 뼈와 살을 발라내듯, 거짓된 자아와 참된 자아를 나누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쓰라린 통증을 동반한다. 썩어 문드러진 환부를 붕대로 대충 감추는 것은 사랑일 수 없다.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도려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치유다.
은혜에는 잔잔한 강물 같은 평안의 날들도 존재한다. 반면 복음이 한 인격과 정면으로 조우할 때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파열음이 발생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욕망의 궤도를 그대로 따르면서 내면의 깊은 평안만을 구하는 것은, 뜨거운 얼음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모순된 일이다.
진정한 복음은 삶의 지향점을 내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손익을 따지는 셈법으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좁은 길, 영혼 깊은 곳에서는 가야만 한다고 울림을 주는 그 길로.
지금 당신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면,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단순히 무너져 내리는 과정이 아닐 수 있다. 잘못 놓인 삶의 기초를 허물고, 그 위에 당신이라는 존재를 영원한 가치로 다시 건축하려는 하나님의 맹렬한 사랑이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은혜는 당신의 삶을 적당히 보수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기초부터 완전히 새롭게 다시 세우러 온 것이다.
매일말씀저널 |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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