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 사랑받는다’는 착각이 신앙을 망가뜨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 확신이 ‘완벽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는 순간, 마음은 조용히 무너진다. ‘잘해야 사랑받는다’, ‘실수하면 무가치해진다’는 생각은 단지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에 대한 깊은 불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 불안은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다. 사랑은 노력한 다음에야 주어지는 것이라는 학습, 그 결과 사람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만든다. 이 구조는 하나님 앞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기도는 열심히 한다. 말씀도 읽는다. 그런데도 마음속은 늘 부족하다는 감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유는 하나다. 신앙이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신을 증명하려 들고, 자격을 먼저 따지게 된다. 은혜가 아니라 평가를 전제로 신앙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경쟁처럼 느껴진다. 내가 잘하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은 날 외면하실 거라는 생각, 내가 부족하면 하나님의 일에는 쓰임받을 수 없다는 믿음. 이 모든 구조는 스스로를 정죄하는 마음 위에 세워진 신앙의 초상이다.

심리학은 이와 같은 내면을 ‘조건적 자기 수용’이라 부른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정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는 상태다. 신앙 안에서도 이 패턴은 그대로 작동한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거룩해야 하니까’, ‘기도해야 하니까’, ‘죄 짓지 말아야 하니까’라는 전제가 앞선다. 이때 신앙은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되고, 거룩은 은혜의 열매가 아니라 자격을 얻기 위한 의무처럼 여겨진다. 하나님은 가까운 아버지가 아니라, 기준을 들이대는 심판자의 이미지로 바뀌어 간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실제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못한다. 스스로를 불완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 감정은 종교적 언어로는 ‘겸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회피다. 하나님은 완벽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부르신다. 그런데 사람은 이 사실을 거꾸로 받아들인다. 완벽하지 않으니 부르시지 않을 것이라는 오해가 생기고, 그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이 심리 구조는 반복되며 강화된다. 하루 기도를 쉬었다는 이유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꺼려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것 같고, 감정이 지쳐 있을수록 그 상태 자체를 더 부끄러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복음은 자격 있는 사람을 위한 소식이 아니다. 죄로 인해 무너진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초대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복음을 자꾸만 평가 기준으로 오해한다. 하나님은 사랑하시지만, 그 사랑은 내가 무엇인가를 잘 해낸 다음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회복은 ‘자기 수용’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신다는 사실보다 더 먼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수해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리라는 신뢰를 가져야 한다. 완벽함은 신앙의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신앙을 망가뜨린다. 신앙의 본질은 실수 이후에도 하나님께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 확신이 없다면, 사람은 끝내 신앙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대 위에 세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부르신다. 기도하지 못한 날에도, 넘어졌던 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신앙은 성취의 기록이 아니라 관계의 지속이다. 그 관계는 나의 완전함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어진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하나님을 더 깊이 붙들 수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을 몰아붙이게 된다. 조금만 쉬어도 불안하고, 작은 실패에도 자책하고, 기도하지 못한 날은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손 내미시는 분이다. 그 손을 붙드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이다. 무너졌다고 느끼는 그 자리, 죄로 인해 주저앉은 그 순간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수 있는 문 앞이 된다.

기억하자.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신앙은 증명의 자리가 아니다. 신앙은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자리, 다시 은혜를 구하는 자리. 그곳이 바로 회복의 자리다.


매일말씀저널 |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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