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믿음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은 인생의 흐름을 결정짓습니다. 어떤 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하나님이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그것을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무신론은 늘 나란히 걸어왔습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과학과 믿음, 이성과 영성은 서로를 향해 오래도록 논쟁했지만, 세상은 어느 한쪽의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연이라 부르는 일들 속에는 이상할 만큼 정교한 질서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불행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뜻밖의 만남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꿉니다. 과학은 그것을 확률이라 부르지만, 그 확률을 가능하게 한 ‘처음의 원인’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습니다. 세상은 혼돈이라기엔 너무 질서정연하고, 무작위라기엔 너무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 공백의 자리에서 우리는 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믿음의 눈이 열릴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세상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바람의 움직임 하나에도 이유가 있고, 하루의 끝에도 섭리가 있습니다. 길 위의 만남과 예상치 못한 헤어짐이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반면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단지 반복되는 일상의 조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재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존재의 그림자를 선명히 만듭니다.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인간의 몸부림 속에 이미 ‘있다’는 감각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논리나 철학의 공식으로 증명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분은 매일의 삶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나십니다. 믿음은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눈이며, 그 눈이 열릴 때 우리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인간은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지만, 그 지혜가 닿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고 세상의 이치를 꿰뚫는다 해도 결국 삶의 벽 앞에서 멈추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사랑이 떠나고 건강이 흔들리며 죽음이 다가올 때, 그 어떤 이론도 우리를 완전히 붙잡아주지 못합니다. 바로 그 한계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한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공간이며, 우리의 끝이 그분의 시작입니다. 기도조차 할 힘이 없던 날에도 이해할 수 없는 평안이 찾아오고, 절망의 가장 깊은 자리에 이상할 만큼 분명한 길이 열립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조정할 수 없는 흐름, 그 불가능의 틈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드러나십니다.
인간의 결핍 속에서
세상은 종종 모순처럼 보입니다. 선한 사람이 고통받고 악한 자가 번성합니다. 그러나 그 모순조차 하나님 안에서는 완전한 이야기의 한 장면일 뿐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단절로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의 서사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조각만 보지만, 하나님은 이미 전체의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포기가 아니라 맡김입니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침묵하실 때조차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계가 깊어질수록 그분의 실재는 더욱 또렷해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완성 속이 아니라 인간의 결핍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멈추는 자리에서 그분은 시작하십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공식으로 설명할 수 없듯, 하나님 역시 증명으로 붙잡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멀리 있는 진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스며 있는 관계의 실재입니다. 믿음이 생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계셨음을 깨닫는 일입니다. 마치 빛이 어둠을 밀어내듯 하나님은 우리의 무지와 닫힌 마음을 통과해 조용히 나타나십니다. 자연의 질서, 인간의 양심, 뜻밖의 평안, 설명할 수 없는 사랑. 그 모든 것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무신론자는 신의 부재를 말하지만, 부재 속에서도 신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솟습니다. 그 그리움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때로 신을 잊지만,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신앙이란 그분을 새로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던 하나님을 다시 인식하는 일입니다.
기적이란 초자연의 돌발 사건이 아니라, 자연 속에 숨은 하나님의 손길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누군가의 용서, 이해할 수 없는 평안, 마지막 순간에도 피어나는 희망.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말해줍니다. 신앙은 논증이 아니라 체험이며, 체험은 언제나 관계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증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관계 속에서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철학이 아니라 만남이고, 논리로는 닿을 수 없지만 사랑으로는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 하늘의 개념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호흡 속에 계십니다. 우리가 울 때 함께 울고 우리가 멈출 때 손을 내미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하나님이 존재하는가’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나는 지금 그분과 함께 있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바뀝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오늘의 숨이 있고,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그 존재의 사실 하나로 오늘이 다시 의미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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