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건너온 사랑과 한 가정을 지키는 은혜

공항 입국장 앞에는 언제나 두 개의 시간이 함께 서 있다.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은 사람들의 밝은 설렘과 이미 너무 많은 밤을 통과해 온 사람들의 깊은 피로가 한 공간에서 섞여 흐른다. 어떤 이는 무거운 캐리어 손잡이를 꽉 잡은 채 서 있고, 어떤 이는 꽃다발을 들고 오래전부터 준비한 마음을 조심스레 다듬는다. 어떤 얼굴에는 긴 이별이 끝났다는 안도가 깃들어 있고, 또 어떤 얼굴에는 이제 시작해야 할 이별의 슬픔이 번져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한 사람은 도착 항공편 번호를 다시 확인하며 출구 문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침내 문이 열리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 사람을 향해 천천히 걸어와 같은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기 시작한다. 사랑이 국경을 건너온다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을 한 번 이상 지나왔다는 뜻이다.

국경을 건너온 사랑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다르고, 가족이 다르고, 돈과 시간과 서류까지 모든 요소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삶 전체가 계산과 변수의 연속이 된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무게를 가진 말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자란 두 사람이 그 단어를 입에 올릴 때 그 무게는 더욱 깊어진다. 한쪽 부모는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쪽 부모는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 속에서 자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다가 깊은 한숨을 내쉰다. 누군가에게 국경은 그저 지도 위의 선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국경은 사랑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현실의 벽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벽 너머를 먼저 보신다. 사람들은 비자와 서류와 규정을 계산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문서 뒤에서 두 사람을 가정으로 부르시는 일을 이미 조용히 진행하고 계신다. 국경을 건너는 비행기를 타기 전 누군가는 출국장 앞에서 떨리는 손을 맞잡고 짧은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말이 서툴러 길게 기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만 “하나님, 이 사랑을 지켜 주세요”라는 단순한 마음 하나면 충분했다. 그 작은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동안, 출입국 시스템과 심사대 뒤편에서도 하나님은 이미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일을 시작하고 계셨을지 모른다.

사랑이 국경을 건너오는 것만 해도 벅찬데, 결혼 생활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또 다른 시간이 열린다. 설렘으로 가득했던 공항 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비로소 일상이 시작된다. 같은 집 안에 두 개의 시간이 함께 들어오고, 한 사람은 자라난 나라의 상식으로 하루를 바라보고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같은 시간을 해석한다. 같은 말도 목소리와 표정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리고, 어떤 날은 그 차이가 작은 서운함이 되고, 어떤 날은 단순한 오해로 흘러간다. 국경을 건너온 사랑은 결국 같은 집 안에서도 다시 수많은 작은 국경들을 만나게 된다. 식탁의 음식이 그럴 수 있고, 아이를 키우는 방식이 그럴 수 있고, 돈을 사용하는 기준이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은혜다. 누가 옳은지 그른지를 나누는 검은 선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한 걸음 더 깊이 이해해 보려는 느린 마음이다. 말이 서툴러 진심 전체가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고, 억양과 표정 때문에 뜻이 엇나가는 순간도 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먼저 한 사람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신다. 말로 다 담기지 못한 부분까지, 침묵과 한숨 사이에 묻힌 의미까지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등을 돌린 밤에도 하나님은 그 두 사람 사이에 남아 계신다. 사람이 흘린 말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실 때가 있고, 미처 사과하지 못한 부분을 하나님이 상대의 마음 안에서 천천히 풀어 주실 때가 있다.

국경을 건너온 사랑에는 특별한 피로가 따른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비행시간을 계산해야 하고, 통장을 들여다보며 항공권 가격을 몇 번씩 다시 확인해야 하며, 어떤 날은 비자 하나가 한 나라를 드나드는 모든 계획을 뒤틀어 놓기도 한다. 출입국 심사대 앞에서 혹시 빠진 서류가 있는지 수십 번 확인하며 마음이 조여드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이 가정을 지금까지 어떻게 지켜 오셨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신다. 길이 막혀 보였던 날마다 이상하게도 도움의 손길을 준 직원이 있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이 풀린 날들이 있었다. 국경과 제도와 규정의 벽 사이를 겨우 통과해 온 것처럼 보이는 모든 순간 뒤에는 이 가정을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다.

사랑이 국경을 건너와 한 집 안에 정착하면, 그다음에는 아이의 시간이 열린다. 아이는 한 사람의 몸 안에 두 나라의 기억을 품고 자라며, 집에서는 엄마의 언어를 듣고 밖에서는 아빠의 언어 혹은 주변의 언어를 듣는다. 학교에서 받은 상처와 거리에서 들은 말이 집 안으로 들어와 섞이기 시작할 때 부모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위로를 건네고 싶지만 어떤 언어로 이 아이의 마음을 더 깊이 어루만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수록 하나님은 한 가지 사실을 잊지 않게 하신다. 이 아이가 어떤 언어로 하나님을 부르든 하나님은 같은 마음으로 들으신다는 것, 두 나라의 말을 배우는 동안 이 아이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의 넓이를 함께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을 건너온 사랑을 지키는 은혜는 특별한 기적의 형식으로만 오지 않는다. 병이 갑자기 나아지는 일이나 눈에 보이는 신비한 체험이 없어도 은혜는 매일의 작은 자리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는 인내, 속도가 느려도 상대의 언어를 조금 더 배우려는 노력, 다투고 난 뒤에도 같은 식탁에 마주 앉는 선택, 피곤한 몸으로 돌아온 밤에도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마음, 서류 문제로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은 날에도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붙들어 주세요”라고 작게 고백해 보는 용기. 이런 것들이 쌓여 한 가정은 지켜진다.

가끔은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선택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나라에서 자란 우리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이 아이에게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것이 이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는 않을까. 그러나 질문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은 다른 대답을 준비하신다. 사람들은 이 가정을 통계나 사회 현상의 일부로 볼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 이 가정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가진 이야기다. 하나님은 이 사랑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시고, 어떤 기도와 눈물 위에 세워졌는지 기억하신다. 국경을 건너온 사랑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걸음일 수 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그래서 국경을 건너온 사랑이 지쳐 쓰러질 것 같은 날, 하나님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쉬어도 된다는 마음을 허락하신다. 완벽하게 걸어내야 인정받는 길이 아니라,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 시간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다. 남들보다 준비해야 할 서류가 더 많을 수 있고, 설명해야 할 일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 가정은 결코 부족한 가정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넓이가 얼마나 큰지를 드러내기 위해 세워진 특별한 장면일 수 있다.

국경을 건너온 사랑과 한 가정을 지키는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언어가 맞지 않는 날도 있었고, 마음이 어긋나던 날도 있었고, 출입국 심사대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을 이어 지금의 가정으로 묶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이제야 천천히 배워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앞날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을지라도, 그 불안보다 먼저 하나님이 이 가정을 붙들고 계시기에 다시 한 걸음 더 걸어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랑이 국경을 건너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가정의 이야기는 이미 특별하다. 그러나 그 사랑을 하나님이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이 이 가정의 진짜 비밀이다. 사람의 힘과 계산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은혜가 이 집의 시간 사이사이를 조용히 받쳐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지켜 갈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 스스로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은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같은 방향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고. 그래서 우리 집은 흩어진 조각들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 집이었다고.

매일말씀저널 | 다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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