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 늦게 배운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빨리 배운 것들은 빨리 써먹었다. 시험 점수에 바로 도움이 되는 공식, 사회 초년생 때 몸으로 익힌 눈치, 사람에게 상처 안 받는 요령 같은 것들. 금방 익혔고, 곧바로 유용했다.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정작 다른 종류의 배움이었다. 이해는 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 머리로는 알았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미뤄 두었던 것들, 몇 번을 실패하고 돌아서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게 된 진실들.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박혀 있다.

어릴 때 신앙은빨리 알면 좋은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님의 뜻을 빨리 분별하는 사람, 소명을 빨리 찾은 사람, 남들보다 먼저 성경을 꿰뚫어 보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나도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그 자리에 금방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믿음도 실력처럼조기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늦게 깨닫고, 뒤늦게 돌이키는 나 자신이 자주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걸 왜 이제야 아냐, 좀만 일찍 알았으면 덜 헤맸을 텐데.”

시편 119 71절은 묘한 고백을 담고 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 이 말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삶이 부족해서 이제야 알겠다는 고백에 가깝다. 그 전에도 말씀은 알고 있었다. 옳고 그름도 구분할 줄 알았다. 다만 자기 세계가 너무 단단해서, 하나님 말씀이 어디에 닿아야 하는지 아직 실감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 거다. 시간을 돌아 한 바퀴 돌아오니, 예전에 들었던 말씀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 이 말이 그 말이었구나.” 뒤늦게서야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수긍이다.

늦게 배우는 진실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개 내 자존심이 버티고 있던 영역이다. 사람에게 기대면 다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끝까지 버티다가, 정말 붙잡을 데가 사라진 뒤에야, 결국 하나님께 기대야 한다는 말을 인정하게 된다. 비교해 봐야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옆을 바라보다가, 몸과 마음이 동시에 고장 나고 나서야 시선을 거두게 된다. 이럴 때 드는 첫 감정은 대개 후회다. “왜 이걸 진작 몰랐지.” 하나님은 때로 그 후회까지 품으시면서, 늦게 배운 이 문장을 영혼의 깊은 곳에 새겨 넣으신다.

신앙 안에서 성숙은얼마나 빨리 깨달았는가로만 측정되지 않는다. 오히려얼마나 깊이 받아들였는가에 더 가깝다. 빨리 배운 진리는 머리를 거쳐 지나갈 수 있다. 늦게 배운 진리는 삶을 돌아 들어와 마음에 오래 머문다. 몇 년, 몇 사건, 몇 번의 눈물을 통과한 뒤에야 받아들인 문장이라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그 과정이 길어서 답답했을 뿐, 하나님 편에서는 애초에 빠른 길만 좋은 길로 보시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이제 와서 뭘 바꿀 수 있을까. 너무 늦었다.” 관계에 대해서, 재정에 대해서, 감정 다루는 법에 대해서, 기도에 대해서. 남들은 이미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나는 이제야 기초를 배우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늦게 배우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차라리 모른 척하고 예전 방식대로 버티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때 이 한 구절이 조용히 떠오르면 좋겠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늦게 배운 이유만큼, 이 배움은 더 오래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은 우리를빨리 아는 사람으로 부르지 않으신다. 끝까지 배우는 사람으로 부르신다. 늦게라도 인정하는 사람, 돌아보며 잘못된 길에서 발을 빼는 사람, 이미 굳은 습관 사이로도 성령께 다시 길을 내어 드리는 사람. 이 사람에게 하나님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말하지 않으신다. 후회 속에서 건진 문장까지도 주님은 재료로 쓰신다. “그때 그렇게 돌지 않아도 되었는데싶은 그 길목들에서, 우리가 누구였는지,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는지, 생각보다 많이 배운다.

그래서 늦게 배운 것들 중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다. 사람에게 전부를 기대하지 않는 법, 결과보다 과정에서 정직을 택하는 법, 감정이 앞설 때 잠깐 멈추고 기도 한 줄이라도 붙잡는 법, 내 속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도를 인정하는 법. 이런 것들은 아무리 늦게 배워도 늦지 않다. 오히려 뒤늦게 배웠기 때문에, 남은 생애 전체를 바꾸는 뿌리가 되기도 한다.

지금왜 이걸 이제야 알았지라는 자책이 마음을 덮고 있다면, 오늘만큼은 문장을 조금 바꾸어 볼 수 있다. “이제라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게 배운 이 진실이, 앞으로의 선택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충분히 이른 배움이다. 중요한 건 남들보다 빨랐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르치실 때 그 배움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늘을 이렇게 기도로 묶고 싶다.

주님, 저는 늘 빨리 깨닫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늦게 알아차리는 나 자신을 자주 미워했습니다. 이제 보니 제가 가장 늦게 배운 것들이, 제 안에서 가장 깊이 남아 있습니다. 후회와 부끄러움 속에서 건진 이 배움까지도 주님께 드립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하신 것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늦게 배웠기에 더 오래 지키며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같은 자리를 돌지 않고 조금씩 달라진 길을 걷게 해 주옵소서.”

매일말씀저널 | 신앙칼럼

PHP Code Snippets Powered By : XYZScripts.com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