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이야기 | 관계·문화 리포트
태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 같은 사건 앞에서도 싸우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언어보다 더 큰 차이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 갈등을 꺼내는 타이밍, 목소리와 표정의 온도다. 이 글은 태국과 한국의 문화·정서 코드를 바탕으로, 두 사람이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개인차는 물론 존재하지만, 아래의 패턴은 실제 국제결혼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흐름이다.
1. 먼저 말하는 쪽과 먼저 멈추는 쪽
갈등이 생겼을 때 한국인 남편은 비교적 빠르게 문제를 말로 꺼내는 편이다. 불편함을 느끼면 바로 지적하거나, 감정을 섞어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 “왜 그렇게 했느냐”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친한 관계일수록, 가족일수록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도 괜찮다는 학습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태국인 아내는 문제가 생겼을 때도 바로 충돌하는 방식을 피하려 한다. 태국 문화에서 직접적인 감정 대립은 관계를 깨뜨릴 위험이 큰 것으로 여겨지며, 정면 승부보다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불편해도 일단 한 번 넘겨 보고, 상황을 보고, 분위기를 살핀 뒤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구도가 자주 나온다. 한국인 남편은 “왜 아무 말도 안 하느냐, 싫으면 싫다고 말해 달라”고 느끼고, 태국인 아내는 “굳이 이렇게 크게 말해야 하느냐, 조금만 부드럽게 말해 줘도 되지 않느냐”고 느낀다. 한쪽은 침묵을 회피로 보지만, 다른 한쪽은 침묵을 관계를 지키기 위한 완충 장치로 사용하는 셈이다.
2. 목소리 크기가 의미하는 것
한국에서는 목소리가 커지고 말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반드시 관계 단절을 뜻하지는 않는다. 특히 가족·배우자 사이에서는 언성을 높였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다시 대화가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되곤 한다. 감정을 어느 정도 터뜨려야 속이 풀린다고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 태국 문화에서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이는 행동이 상대에게 강한 위협과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겉으로는 웃음을 유지해도 마음속에서는 “이 관계가 안전하지 않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래서 태국인 아내는 남편이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물러나거나 말을 줄이는 선택을 한다. 이때 한국인 남편은 “금방 풀 이야기인데 너무 심각하게 받는다”고 느끼고, 태국인 아내는 “이렇게까지 말해야 할 문제였나”라는 상처를 받는다.
3. 웃음과 미소 뒤에 숨겨진 감정
태국인 아내가 싸움 중에도 웃거나 미소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 남편 입장에서는 “지금 진지한 이야기 중인데 왜 웃느냐, 진심이 아닌 것 아니냐”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태국 문화에서는 분위기를 극단으로 끌고 가지 않기 위해, 불편한 상황에서도 웃음으로 긴장을 완화하는 경우가 많다. 웃는다고 해서 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화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스스로를 조절하는 방식인 경우가 많다.
한국 문화에서는 진지한 갈등 상황에서 웃는 행동이 상대를 가볍게 여기거나,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로 읽히기 쉽다. 그래서 같은 미소가 한쪽에게는 “괜찮다, 조금 누그러뜨리려는 신호”이지만, 다른 한쪽에게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라는 부정적 메시지로 해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4. 침묵과 거리두기의 뜻
갈등이 커졌을 때 태국인 아내는 대화를 중단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거나, 일정 시간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 행동은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보다는, 감정이 더 악화되기 전에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에 가깝다. 태국에서는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 한 발 물러나는 것이 미덕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인 남편은 이 침묵과 거리두기를 “무시당했다”, “벽을 세웠다”라고 느끼기 쉽다. 바로 풀고 넘어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말 없이 방에 들어가는 행동을 “대화 의지가 없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침묵이 반드시 이별 신호나 냉담의 표시가 아니라 “이 정도면 여기서 멈추자, 더 나빠지면 안 된다”는 내부 경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한국인 남편이 조급하게 방을 열고 다시 이야기하자고 할 때, 태국인 아내는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계속 몰아붙인다”는 압박을 느낄 수 있다.
5. “미안해”라는 말의 사용법
사과 표현도 다르게 작동한다. 한국에서는 갈등 후 “미안해”라는 한마디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말이 나와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한국인 남편은 상대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짚어가며 “이 부분은 잘못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태국인 아내는 말로 사과하는 것보다, 행동과 태도 변화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날 평소처럼 식사를 챙기거나, 작은 선물을 준비하거나, 다정하게 몸을 기대는 식으로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이때 “미안하다”는 말이 따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본인은 분명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데, 한국인 남편은 “사과가 없었다”고 느끼며 여전히 응어리를 품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반대로, 태국인 아내 입장에서 한국인 남편의 사과는 “말뿐인 미안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격한 말과 행동이 반복되고, 다음 날 형식적인 “미안해”만 남으면 실질적 변화가 없다고 느끼기 쉽다. 결국 한 사람은 “말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고, 다른 한 사람은 “말보다 행동이 따라와야 진짜 사과”라고 생각하며 엇갈린다.
6. 제3자에게 털어놓는 방식
갈등이 쌓일수록, 두 사람은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려 한다. 이때도 문화 차이가 나타난다. 태국인 아내는 친정엄마나 형제자매, 가까운 친구에게 비교적 자세히 상황을 공유하는 편이다. 태국 사회에서 가족과 친구 네트워크는 정서적 지지의 가장 중요한 그물망이라, 힘든 일을 주변에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국인 남편은 직장 동료나 친구와 술자리에서 푸념을 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결혼생활을 깊이 있게 털어놓기보다는, 짧게 불만을 이야기하고 분위기를 돌리는 방식이 많다. 가정 문제를 외부에 상세히 공유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이 차이는 나중에 “왜 내 가족과 친구들이 우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느냐”는 불편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인 남편은 사적인 이야기가 해외 친정 쪽에 자세히 전달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고, 태국인 아내는 “이럴 때 가족에게 말도 못하면 누구에게 말하느냐”고 되묻는다. 각자의 문화에서 가족과 친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오해가 줄어든다.
7. 화해의 시점과 방식
갈등 뒤에 화해하는 타이밍도 다르다. 한국인 남편은 어느 정도 대화가 끝나고 “사과”가 오간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갈등을 정리하는 순간이 명확하게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구조다. 그래서 다툰 날이라도 같은 침대에서 자고, 다음 날 같이 밥을 먹으며 “이제 끝난 것”으로 정리하려는 경향이 많다.
태국인 아내는 감정의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말로 합의를 봤다고 해서 마음이 바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억눌렀던 감정,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 언성 높은 대화에서 느낀 위협감이 서서히 가라앉아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때 한국인 남편이 “이제 좀 그만하지, 아직도 그 이야기냐”고 하면, 아내는 자신의 감정이 가볍게 취급된다고 느끼기 쉽다.
국제결혼 부부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성숙했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회복 속도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자신이 익숙한 화해 방식만을 기준으로 상대를 판단하면 상처는 더 깊어진다.
정리하면, 태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이 싸울 때 드러나는 차이는, 각 사회가 오랫동안 만들어 온 감정 표현 방식과 관계 유지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 차이를 이해하고 나면, 같은 행동도 전혀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한다. 국제결혼 가정에서 갈등을 줄이는 첫 단계는 “상대가 왜 저렇게 반응할까”를 성격이 아니라 문화와 감정 구조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렇게 볼 때, 갈등은 서로의 세계를 배우는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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