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에세이] 말로는 괜찮다 했지만, 마음은 아직 아플 때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 34:18, 개역개정)

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그림자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상처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 잘 정리된 말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되어간다.

“괜찮아, 이제 다 지나갔어. 나도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어.”

입술은 습관처럼 의연함을 말하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와 불 꺼진 방에 홀로 앉으면 그 말은 힘없이 벗겨진다. 그 아래, 아직 아물지 않아 욱신거리는 마음의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혹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꺼냈던 그 한마디가 사실은 나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말로는 괜찮다고 선언했지만,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채 여전히 아픈 자리에 머물러 있음을 인정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것들

어떤 상처는 사건이 종결되었다고 해서 감정까지 함께 끝나지 않는다. 그날의 차가웠던 공기, 나를 향하던 싸늘한 눈빛, 유난히 크게 들렸던 한숨 소리가 마치 먼지처럼 몸 어딘가에 붙어 있다가 고요한 밤이면 불쑥 떠오른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덜 예민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냥 웃어넘길 수는 없었을까?’

지나간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생하고 또 재생하며 스스로에게 ‘괜찮음’을 강요해 본다. 이미 지난 일에 언제까지 붙들려 있을 거냐는 내면의 비난이 올라오면,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덮어두면 언젠가 잊힐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마음의 원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치우지 못한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의 깊은 서랍 속에 구겨져 있을 뿐이다. 겉보기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듯해도, 별것 아닌 농담 한마디에 심장이 내려앉거나 누군가의 무심한 표정에 하루 종일 기분이 가라앉을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내 안에 있구나.

믿음이라는 이름의 압박

신앙 안에서도 우리는 슬픔을 빨리 털어내는 것이 ‘좋은 믿음’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하나님이 다 아시니 오래 아파하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은 이제 그만 거두고 웃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한다.

“하나님, 저는 괜찮아요. 다 이해했고 용서했어요.”

우리는 하나님께조차 연기를 한다. 믿음이 좋아 보이는 말, 다 초월한 듯한 태연한 기도로 아픔을 포장한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고 눈을 뜨면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짓눌려 있다. 누군가 낡은 상처를 건드리면 소스라치게 놀라는 자신을 보며 좌절한다.

하지만 성경 속 하나님은 우리의 상처를 대충 덮고 가시는 분이 아니었다. 한숨 섞인 기도를 길게 들어주셨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을 밀어내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 좋은 척’하는 연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정직한 신음과,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기도를 가장 귀하게 받으신다.

상처 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

진정한 회복은 내 감정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사실 저는 괜찮지 않습니다. 용서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떠올리면 속이 뒤틀립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혼자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이 기도는 깔끔하지도, 성숙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솔직함이 비로소 하나님께서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실 ‘공간’을 만든다. 내가 나를 억지로 설득하던 것을 멈출 때,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주신다.

신앙은 감정을 무시하고 억누르는 힘이 아니다. 오히려 그 아픈 감정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힘이다. “하나님, 그날의 표정이 잊히지 않습니다. 저를 무시했다는 생각에 여전히 화가 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아픔을 토해낼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억 속 그 어두운 장면으로 함께 내려가 주신다. 그날, 내가 철저히 혼자였다고 느꼈던 그 시간에도 하나님이 곁에서 함께 울고 계셨음을 보여주신다.

흉터 위로 임하는 은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흠 하나 없는 완벽한 감정 상태가 아니다. 상처 난 마음, 찢어진 감정을 가지고서라도 “하나님께 가겠습니다”라고 선택하는 그 의지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용서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그 작은 몸짓을 하나님은 ‘믿음’이라 불러 주신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은 아직 아픈 당신에게, 하나님은 오늘 이렇게 다가오신다.

“괜찮다고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다. 네가 우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품에 안겨 있다는 증거란다.”

하나님께 기대어 우는 눈물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상처는 비록 흔적을 남길지라도, 그 흉터는 하나님의 손길이 머물렀다는 은혜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말라. 당신의 아픔이 하나님께 닿는 순간, 회복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시작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기도

하나님,

사람들 앞에서는 애써 웃으며 괜찮은 척했지만,

제 마음 깊은 곳은 여전히 쓰리고 아픕니다.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는 조급함에

제 상처를 다독이지 못하고 외면했던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오늘,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정직하기를 원합니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해되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들을 주님 앞에 쏟아놓게 하소서.

저의 눈물이 주님의 옷자락을 적실 때,

혼자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울고 계심을 느끼게 하소서.

상처를 없었던 일처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도 주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매일말씀저널

PHP Code Snippets Powered By : XYZScripts.com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