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문화 이야기 | 관계·문화 리포트
국제결혼은 한 사람과 또 한 사람의 만남을 넘어, 두 집안과 두 사회, 두 언어와 두 세계관이 한 집 안으로 들어오는 선택이다. 연애 시기에는 잘 보이지 않던 차이들이 결혼 후, 특히 처음 3년 안에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나가는지가 이후 10년, 20년의 관계 분위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결혼 부부들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지점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같은 말을 해도 전혀 다르게 듣는 언어와 표현의 간극
국제결혼에서 언어 문제는 단순한 어휘와 문법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진짜 핵심은 말의 무게, 말투,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직설을 솔직함으로 여기는 문화와, 돌려 말하는 것을 예의와 배려라고 여기는 문화가 만나면 같은 문장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전달된다. 한 사람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공격·비난·무시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식이다.
농담과 장난의 경계도 다르다. 어떤 나라에서는 친해질수록 서로를 더 세게 놀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표현이 깊은 무례에 해당한다. 말한 사람은 가벼운 농담이라 생각하는데, 듣는 사람은 하루 종일 마음에 담아 두기도 한다.
처음 3년 동안에는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방식에서 오는 상처가 더 크다. 이 시기를 덜 아프게 지나가려면 상대 언어를 단어 차원에서만 배우지 말고, 그 나라에서 특정 톤과 표현이 실제로 어떤 느낌을 주는지, 침묵과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2. 돈을 쓰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인생관의 차이
경제 문제는 국제결혼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갈등 요소 가운데 하나다. 단순히 누가 더 많이 벌고, 누가 더 많이 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속한 사회가 돈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는 오늘의 즐거움과 경험을 중시하고, 생활비 외에 남는 금액은 여행과 외식, 가족 이벤트에 적극적으로 쓴다. 다른 문화는 저축과 집, 보험 같은 미래의 안전장치를 우선시하며, 잔고가 일정 수준 이상 쌓여 있어야 안심한다. 한 통장을 함께 쓰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한다. 한 사람은 “왜 이렇게 안 쓰고 아끼기만 하느냐”고 답답해 하고, 다른 사람은 “왜 이렇게 계획 없이 쓰느냐, 불안하다”고 느낀다.
여기에 본가로 보내는 송금이 더해지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외국인 배우자는 매달 일정 금액을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보내는 문화에 익숙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인 배우자는 이것을 “우리 가정 살림 밖으로 빠져나가는 돈”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신에게 가족은 도대체 누구냐”, “왜 우리 집보다 본가를 우선하느냐”라는 감정이 쉽게 쌓인다. 이 갈등을 줄이려면 효도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각 나라의 경제 수준, 사회안전망, 부모 부양 관습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부모를 돕지 않으면 사실상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맥락을 모르고 보면 상대의 행동이 단지 이기적으로만 보이게 된다.
3. 시댁·친정·본가·처가, 가족 문화가 개입하는 방식
결혼 초기 3년 동안 많은 국제결혼 부부가 강하게 체감하는 부분은 가족이 부부 관계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결혼을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 양가 집안 전체가 함께 얽히는 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명절과 제사, 돌잔치, 각종 가족 행사가 많고, 부모의 기대를 의식하며 움직이는 경우도 잦다.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결혼 후 부부가 부모로부터 훨씬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쪽에서는 “이 정도는 부모님께 당연히 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에서는 “왜 결혼했는데도 여전히 부모 허락을 받아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시댁과 처가를 방문하는 횟수, 용돈과 선물의 기준, 부모에게 어떤 말투와 태도로 대하는 것이 예의인지에 대한 감각도 서로 다르다.
한국 시골과 도시, 동남아 농촌과 도시, 일본과 대만, 중국 등은 각각 장모·시부모·친척 관계에 대한 기대와 압력이 다르게 작동한다. 이 차이를 정리하지 않은 채 시간이 지나면, 한쪽은 늘 희생하고 있다고 느끼고, 다른 한쪽은 “우리 집에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조차 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 문화가 더 옳은지 따지는 일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서로의 부모를 어떤 기준으로 대할 것인지”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결혼 초기 3년은 기존 가족 문화와 새로 만들 가족 문화가 부딪히며 모양을 잡아 가는 시기다. 이때 대화를 피하면, 나중에는 “원래부터 이렇게 해 왔다”라는 말로 굳어져 버린다.
4. 시간 감각과 생활 리듬의 충돌
국제결혼 부부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갈등 중 하나는 시간에 대한 감각 차이다.
약속 시간에 얼마나 정확히 도착해야 하는지, 늦을 때 어느 정도 여유를 허용하는지, 늦는다면 사전에 반드시 연락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국가마다 다르다. 어느 문화에서는 5분 지각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보지만, 다른 문화에서는 30분 정도 늦는 것도 일상적인 범위 안에 들어간다.
생활 리듬도 다르다.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한다고 느끼는지, 미리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지,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정하는지에 대한 선호도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은 주말에 집안일과 정리를 끝내야 마음이 놓이고, 다른 사람은 주말을 온전히 쉬는 날로 간주한다.
이처럼 시간과 리듬에 대한 기본값이 다르면 “너는 항상 네 방식대로만 움직인다”, “너는 왜 이렇게 하루하루를 계획 없이 사느냐”라는 불만이 쌓인다. 시간 개념은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 각 사회가 불안과 불확실성을 다루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계획과 시간 엄수를 통해 안정감을 얻는 문화도 있고, 유연함과 즉흥성을 통해 관계를 우선하는 문화도 있다. 이 배경을 이해하면 상대의 행동이 덜 꼬여 보인다.
5. 갈등을 끝내는 방식이 서로 다른 문제
결혼 초기에는 갈등 자체보다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오는 상처가 더 크다.
어떤 사람은 감정이 올라올 때 바로 말하고,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높여서라도 속을 비워야 한다고 느낀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갈등 상황 자체를 피하려 하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대한다. 한 사람은 “말을 안 해서 답답하다”고 느끼고, 다른 사람은 “왜 매번 싸움을 키우느냐”고 힘들어한다.
또 한쪽은 “괜찮다, 나중에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며 속도를 늦추려 하고, 다른 한쪽은 이 말을 “나랑 대화하기 싫다” 혹은 “문제를 외면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솔직함과 절제가 부딪치고, 직면과 회피가 맞서는 장면이다.
국제결혼 부부 상담에서는 이 지점을 위해 “우리만의 싸움 규칙”을 만드는 작업을 강조한다. 감정이 올라와도 넘지 않기로 합의할 선을 정하고, 서로에게 절대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표현을 정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미루더라도 언제까지는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원칙을 세우는 식이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갈등은 내용보다 “스타일” 때문에 더 깊어지고 길어진다.
6. 남편·아내·부모 역할에 대한 상상 충돌
각 나라에는 이상적인 남편상과 아내상,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집단적인 이미지가 있다. 국제결혼에서는 서로 다른 매뉴얼을 가진 두 사람이 한 집에 들어온다.
한 사회에서는 남편이 주로 경제력을 책임지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여겨지며, 아내는 집안과 아이, 정서적 돌봄을 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다른 사회에서는 맞벌이와 역할 분담, 파트너십을 당연한 기준으로 삼는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 가사·육아·경조사 준비 등 구체적인 일을 둘러싸고 자연스럽게 충돌이 발생한다.
“당신 나라에서는 아내가 이 일을 다 맡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준을 따르기 어렵다”는 말과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가 항상 이렇게 해왔다, 이 정도는 기본 아니냐”는 말이 반복해서 오가는 식이다.
국제결혼에서는 외국인 배우자가 상대적으로 약자 위치에 놓이면서, 원래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역할을 떠맡거나, 반대로 한국 쪽이 본국에서 기대하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압박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 3년은 결국 서로의 현실과 체력, 경제 상황에 맞게 역할을 다시 디자인하는 시기다. 집안일, 돌봄, 생계, 양가 부모와의 접촉을 누가 어느 정도 맡을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처음부터 네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식의 불만으로 굳어지기 쉽다.
7. 거주국, 아이, 노후까지 이어지는 미래 시나리오 차이
마지막으로, 국제결혼 부부가 초기에 자주 부딪히는 주제는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이다.
결혼 직후에는 “일단 여기에서 함께 살아보고, 나중에 필요하면 옮기자” 정도의 느슨한 합의만 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나고, 양가 부모의 건강 상태가 달라지고, 직장과 경제 상황이 변하면 질문은 훨씬 구체적으로 바뀐다.
아이를 어느 나라에서 키울 것인지, 학교는 어디를 기준으로 정할 것인지, 조부모와의 물리적 거리를 누구에게 더 가깝게 둘 것인지, 어느 나라 국적을 선택할지, 노후는 어디에서 보낼지 등 현실적인 선택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이때 서로의 머릿속에 그려진 인생 지도는 의외로 다를 수 있다. 한쪽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다른 쪽은 처음부터 이 나라에 정착해 사는 것을 전제로 움직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을 말하지 않으면, 표면은 조용하지만 안쪽에는 “언젠가 크게 부딪힐 수 있는 지점”이 숨겨진다.
진짜 중요한 것은 당장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그림을 품고 있는지 솔직하게 나누는 일이다. “지금은 정답을 정할 수 없지만,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는 서로 알고 있다”는 상태만 되어도 불안과 오해는 크게 줄어든다.
국제결혼의 처음 3년은 문제의 목록이 늘어나는 시간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접점을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언어, 돈, 가족, 시간, 갈등 처리 방식, 역할, 미래에 대한 시각까지 일곱 영역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이 차이를 서로의 잘못으로만 보지 않고 새로운 가족 문화를 만들어 가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면, 같은 3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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