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말 위에 같은 영이 흐를 때

세상은 여전히 나뉘어 있다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며 살아온 환경도 서로 다르다. 함께 살아가는 일은 이상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복잡하고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다가가는 일은 언제나 오해와 충돌을 동반하고, 다름 앞에 선 마음은 쉽게 닫힌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어울린다. 낯선 것에는 경계하고, 익숙한 것만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빠르게 다문화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가 오가고, 같은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문화가 공존한다. 같은 회의실에 앉아 있지만 배경도 사고방식도 다르다. 처음엔 어색하고, 자주 충돌이 생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전에는 없던 소리와 색감, 넓이와 깊이가 있다. 다름이 불편함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맞이한 은혜다.

다양성은 때로 혼란처럼 보인다. 여러 말이 동시에 쏟아지는 상황에서는 중심을 잡기 어렵다. 서로의 말이 겹쳐지고 흐려지면 누구의 소리도 온전히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혼란 안에서도 어떤 흐름이 시작될 수 있다. 언어는 여전히 다르지만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익숙하지 않던 표현이 낯설지 않게 들리고, 한때 낯선 존재였던 사람이 조용히 삶 안으로 들어온다. 다름은 소음이 아니라 새로운 조화의 출발이 된다.

진짜 문제는 언어의 차이가 아니다. 더 깊은 단절은 마음이 닫혀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옳다는 고집. 저 사람은 틀렸다는 판단. 이해할 수 없다는 무의식적 거부. 그것이 경계가 되고 벽이 된다. 다름은 그 벽 뒤로 밀려나고, 결국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 됨은 같은 말이나 같은 배경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말 위에 흐르는 같은 영. 그 영이 임할 때 다름은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모였다. 각기 다른 언어와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들었다. 그날 무너진 것은 말의 장벽만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 민족과 문화의 구분, 눈에 보이지 않던 편견이 허물어졌다. 누가 누구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단지 위로부터 내려온 한 흐름이 모두의 마음 위에 스며들었다.

그것은 설명보다 명확했고, 소리보다 깊었다.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말이 마음에 닿았고, 낯설던 문화가 더 이상 위협이 아니었다. 그 변화는 밖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되었다. 논쟁이 아니라 감동이었다. 설득이 아니라 공명이었다. 하나 됨은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일이 아니라, 서로가 같은 중심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이들이 하나의 흐름 안에 들어가면 각자의 소리가 충돌이 아니라 하모니가 된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어떤 언어도 외면당하지 않고, 어떤 문화도 억눌리지 않는다. 모든 다름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 어우러진다. 세상이 흩어놓은 것들이 그분 안에서 다시 모인다. 이것이 공동체가 회복되는 본질이다.

진정한 소통은 말을 잘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기꺼이 들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향해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여유, 낯선 문화를 위협이 아니라 선물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것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다. 성령이 열어 주시는 마음의 반응이다. 내 좁은 기준을 넘어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할 때, 진짜 하나 됨이 시작된다.

지금 이 시대는 다시 흩어지고 있다. 기술은 연결되었지만 마음은 끊어져 있다. 말은 넘치지만 신뢰는 사라지고, 대화는 많지만 공감은 적다. 서로를 향해 다가가기보다 점점 더 자기 안으로 숨어든다. 그러나 그 바로 그때, 하나님은 또 다른 방식으로 흐름을 시작하신다. 질서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바람처럼 다가오고 불처럼 타오르며,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흔드신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 먼저는 보이지 않던 이들, 들리지 않던 이들 위에 그 흐름이 임한다. 가장 낮고 가장 멀던 자리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같은 언어가 아니라 같은 영이 흐를 때, 그 자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곳이 된다. 다름은 조건이 아니라 가능성이 된다. 그 가능성이 공동체를 다시 세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다. 어떤 흐름 안에 내 마음이 놓여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은 말인가 영인가. 내 귀는 방어하고 있는가 아니면 들으려 하는가. 나는 닫혀 있는가 열려 있는가. 다름 앞에서 움츠러드는가 아니면 환대하는가. 이것이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들려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모든 다름 안에서 같은 생명을 흐르게 하신다. 복음은 모든 것을 하나의 색으로 칠하지 않는다. 각자의 언어로 각자의 고백이 드러나되, 그 중심에 같은 영이 흐르도록 이끄신다. 그것이 진짜 하나 됨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서로 다른 이들의 말 위로 같은 진리가 울려 퍼진다. 다른 말이지만 같은 감동. 다른 배경이지만 같은 믿음. 다름은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자리다.

매일말씀저널 | 다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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