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자녀 교육, 부모가 꼭 알아야 할 심리·언어 발달의 차이점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은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에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다문화 부모들이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를까?”, “언어가 늦는 게 단지 한국어 때문일까?”, “감정 표현이 서툰 건 성격일까?”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이 글은 다문화 가정 자녀의 심리·언어 발달 과정이 일반적인 성장 양상과 어떻게 다른지, 부모가 꼭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차이점을 중심으로 정리한다.

언어 지연은 ‘이중 언어 환경’의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는 보통 두 개 이상의 언어 환경에서 자란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어를 하지 않거나, 가정에서 모국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면 아이는 언어 간의 경계를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특히 3세 이하의 유아는 아직 언어 구조 자체를 확립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단어 선택이 늦어지거나 말의 유창성이 낮을 수 있다.

이것은 반드시 언어 능력의 ‘지체’가 아니라 ‘다언어 처리 과정’에서 오는 잠정적 지연이다. 미국 소아언어청각학회(ASHA)에 따르면, 이중 언어 아동은 단일 언어 아동에 비해 어휘 수에서는 늦을 수 있으나 두 언어를 합치면 오히려 더 풍부한 언어 자원을 갖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어 수나 말 트는 속도만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언어를 더 편하게 사용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체성 혼란이 감정 표현에 영향을 준다

다문화 자녀는 자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일찍 부딪힌다. 외모, 성, 이름, 국적, 언어, 문화까지 여러 정체성이 섞여 있기 때문에 자기 개념이 일관되지 않게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친구들이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야”라고 말하거나 부모가 한국 문화를 몰라 겉도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소속감의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감정 표현에도 영향을 준다. 아이가 울거나 화내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감정이 지나치게 억눌리거나 반대로 과하게 폭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이 단지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혼란’에서 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특히 부정적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과 경험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대화가 필요하다.

또래 관계의 어려움은 언어보다 ‘문화 코드’에서 비롯된다

다문화 아동의 부모들은 자녀의 언어 능력을 집중적으로 걱정하지만, 실제 학교생활에서 더 큰 어려움은 ‘문화 코드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국 학교는 비교적 권위 중심적인 환경이며, 암묵적인 질서(예: 나이, 존댓말, 반응 방식 등)가 강하다. 그러나 외국 출신 부모의 문화에서는 표현 방식이나 대화 예절, 감정 반응이 훨씬 자유롭고 개방적일 수 있다.

이 차이는 아이에게 ‘나는 틀리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특히 친구 관계에서 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선생님의 지시에 반응하지 못할 경우 “우리 애가 말을 안 듣는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이는 단순히 언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 방식’의 학습 문제다. 따라서 다문화 부모는 아이에게 한국 문화의 규범과 대화 방식 등을 일상 속에서 설명해주어야 하며, 학교 선생님과 소통할 때도 이 부분을 함께 이해하고 조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의 불안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많은 다문화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한국어를 못해서 아이가 뒤처지는 것 같다”, “문화 차이 때문에 아이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같은 불안은 자녀 앞에서 더 조심스럽고 위축된 태도로 나타난다. 그러나 부모의 감정은 아이에게 비언어적으로 그대로 전달된다.

심리학자 다니엘 시겔(Daniel Siegel)은 ‘감정 조율’ 이론을 통해, 부모의 정서가 자녀의 신경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특히 영유아기의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 표정, 목소리 톤, 말의 리듬을 통해 감정 상태를 배우고, 그로부터 ‘나는 안정한 존재다’ 혹은 ‘나는 불안한 존재다’라는 감정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기 감정에 먼저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지지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자녀 교육의 첫 단추가 된다.

언어와 감정의 발달은 따로가 아니라 함께 간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실은, 언어 발달과 감정 발달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말을 잘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 안의 감정을 말로 설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 기분 어땠어?”, “그때 왜 속상했을까?”, “이 말을 한국어로 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은 언어 능력과 감정 조절력을 동시에 기를 수 있는 방식이다.

심리적으로 안정된 아이는 언어도 더 빠르게 흡수한다. 반대로 언어는 말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이다. 다문화 부모가 이 점을 기억할 때, 아이의 성장 속도를 조급하게 바라보지 않고, 각자의 발달 여정을 따뜻하게 지지해줄 수 있다.

다문화 자녀는 단순히 ‘한국어가 부족한 아이’가 아니라, ‘두 문화 사이에서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부모가 아이의 발달을 비교나 조급함이 아니라 이해와 신뢰로 바라볼 때, 자녀는 문화와 언어를 넘어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매일말씀저널 | 다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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