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영혼의 겨울, 그저 내복을 한 겹 더 껴입는 시간

겨울 아침, 이불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보일러가 돌아가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여전하고,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는 며칠째 마르지 않아 눅눅한 냄새를 풍긴다. 출근길 버스 창가에 서린 김을 손으로 닦아내면, 앙상한 가로수들이 잿빛 하늘 아래 덜덜 떨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그 메마르고 볼품없는 풍경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빨리 이 추위가 지나가기를, 다시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기를 막연히 기다릴 뿐이다.

우리네 신앙생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는 늘 “성령 충만”을 외치고 “은혜의 단비”를 구하지만, 정작 우리가 살아가는 영혼의 시간은 대부분 건조한 겨울이다. 기도를 해도 혼잣말을 하는 것 같고, 성경을 펼쳐도 까만 건 글자요 하얀 건 종이일 뿐, 아무런 감동이 없다. 예전에는 찬송가 반주만 들어도 눈물이 났다는데, 지금은 하품을 참느라 눈물이 찔끔 난다. 하나님이 내 사정을 듣고 계신 건지, 아니면 잠시 자리를 비우신 건지 알 길이 없다. 이 막막하고 답답한 정체기, 이것이 바로 영혼의 겨울이다.

사람들은 이 겨울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억지로 목소리를 높여본다. 어떻게든 이 차가운 냉골을 다시 뜨겁게 데워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부흥회도 쫓아다녀 보고, 유명하다는 목사님 설교 유튜브도 찾아 듣는다. 하지만 장작을 아무리 넣어도 불은 붙지 않고 연기만 매캐하게 피어오를 때가 있다. 그때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들은 다 봄날의 꽃밭을 걷는 것 같은데, 나만 시베리아 벌판에 서 있는 기분. 신앙이 식어버린 것 같은 두려움.

그러나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 영혼에도 흐름이 있다. 일 년 내내 여름인 곳은 사막밖에 없다. 뜨거운 태양만 내리쬐면 땅은 갈라지고 모든 생명은 타 죽는다. 적당히 비도 오고, 낙엽도 지고, 때로는 꽁꽁 얼어붙기도 해야 땅심이 생긴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다. 365일 내내 가슴이 뜨겁고 매일매일 기적을 체험하는 삶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라 조증(躁症)이다. 감정이 고조된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농부는 겨울 논바닥을 탓하지 않는다. 추수 끝난 텅 빈 들판, 볏짚만 뒹구는 그 황량한 땅을 보며 “망했다”고 울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을 땅이 쉬는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겨우내 땅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흙 입자 사이의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숨을 쉰다. 해충들은 얼어 죽고, 땅은 다가올 봄에 씨앗을 품을 힘을 비축한다. 보기엔 죽은 땅 같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땅속 깊은 곳에서는 가장 치열한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신앙의 겨울도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내면의 흙을 뒤집어엎고 고르시는 시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열매는 없다.  하지만 그 무기력한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의 실체를 본다. 감정의 거품이 다 빠지고 난 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하나님 없이는 얼마나 나약한 흙덩어리에 불과한지 처절하게 깨닫는다.

우리는 이 겨울을 빨리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여기지만, 싹이 트지 않는다고 꽁꽁 언 땅을 손으로 파헤쳐봤자 손톱만 깨지고 흙만 더 단단해질 뿐이다. 겨울에는 겨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두꺼운 내복을 꺼내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묵묵히 견디는 수밖에 없다.

신앙에서 ‘내복을 입는 일’이란 무엇일까. 대단한 영적 체험을 구하는 것을 멈추고, 그저 주어진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가족들과 귤 까먹으며 TV 보는 것. 기도가 안 나오면 그냥 “하나님, 답답합니다.” 한마디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 성경이 안 읽히면 그냥 덮어두고 찬송가 한 장 조용히 흥얼거리는 것. 하나님이 침묵하신다면 나도 같이 침묵하며 그 곁을 지키는 것.

화려한 꽃을 피우는 것만이 신앙이 아니다. 눈보라 치는 날, 뿌리가 뽑히지 않으려 땅을 꽉 움켜쥐고 버티는 그 처절한 몸부림도 위대한 신앙이다. 잎사귀 하나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그래도 나는 그분을 떠나지 않는다”고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는 그 앙상한 가지가 사실은 진짜 믿음이다.

봄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온다. 아무리 추워도 입춘은 오고, 언 땅을 비집고 냉이는 올라온다. 내 영혼의 계절도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오늘 하루치 추위를 견뎌낼 내복 한 벌을 챙겨 입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은 지독한 겨울 한가운데 서 있을지 모른다. 하나님이 내 이름조차 잊어버린 것 같은 소외감,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철문 같은 현실 앞에서 떨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당신이 잘못해서 겨울이 온 게 아니다. 그저 때가 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반드시 간다.

얼음장 밑으로도 물은 흐른다. 겉보기에 멈춰버린 것 같은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생명의 물을 흘려보내고 계신다. 지금은 그저 웅크리고 있어도 된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자리를 떠나지만 마라.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볕 들 날은 반드시 온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고, 영혼의 섭리다.

매일말씀저널 | 신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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