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고무장갑 낀 손으로 드리는 예배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봉투 밑부분이 살짝 찢어졌는지 시큼하고 비릿한 국물이 손가락을 타고 흐른다. 쇠난간은 겨울 냉기처럼 차갑고, 축축한 계단 냄새가 코끝에 걸린다. 계단참의 작은 창문에 내 그림자가 어렴풋이 비치는데, 그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다.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헝클어진 머리, 이 순간 거룩함이나 경건함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거룩’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먼저 정돈된 얼굴을 떠올린다. 깨끗한 셔츠 깃, 향이 은근하게 남는 손,  그런 상태에서는 하나님이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삶이 더러워지는 자리에서는 눈이 빨리 도망간다. 찌그러진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찌꺼기,  꽉 막힌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뜨끈한 냄새 앞에서는 거룩은 자꾸 저쪽으로 밀리고, 현실만 여기 남는다.

시선을 돌려 30년 동안 목수 일을 했던 예수님을 상상해 본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나무를 깎고 다듬는 데 썼다. 예수님의 손은 거친 옹이에 긁히고 망치질에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이었을 것이다. 나무토막 하나를 정성껏 다듬어 의자를 만들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그 성실함 속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거룩함은, 박수나 조명과는 상관없는 자리에서 자주 발견된다.
예배당 바깥의 어떤 집, 방문을 닫으면 더 좁아지는 방 하나. 치매가 깊어진 어른을 돌보는 사람이 있다. 비닐장갑이 손가락에 달라붙고, 기저귀를 갈 때마다 따뜻한 체온과 시큼한 냄새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배설물이 묻은 옷을 욕실 바닥에서 주물러 빨아내고, 방금 뱉은 욕설을 못 들은 척 다시 숟가락을 든다. 입을 벌리지 않는 입 앞에서 밥을 기다리는 건 버팀이다. 오늘 하루를 넘어가기 위한, 아주 작은 버팀.

그 방에는 “잘하고 있다”는 말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이 있고, 몸에 달라붙는 냄새가 있고, 잠깐 비었다가 다시 차오르는 한숨이 있다.

거룩이 정말 구별됨이라면, 이런 구별도 있다. 남들이 피하고 싶어 하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구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생명을 돌보는 쪽에 남는 구별. 거룩은 종종 높은 곳에서 빛나기보다, 낮은 곳에서 사람을 살린다.

세상은 ‘탁월함’이나 ‘성공’을 거룩함의 증거로 삼으려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영광이라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구별됨’이다. 그리고 이 구별됨은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기피하는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는 태도에서 나온다. 누가 보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기계를 돌리는 공장 노동자의 성실함, 손님이 남기고 간 지저분한 테이블을 닦는 아르바이트생의 정직함, 아이들의 투정을 받아내며 하루를 버티는 주부의 인내. 이 모든 것이 예배다.

우리는 자꾸만 증명하고 싶어 한다. 내가 얼마나 신앙심이 깊은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난다.

하나님은 우리의 대단한 업적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 우리가 세운 빌딩이나 우리가 모은 돈다발은 그분께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다. 쓰레기통을 비우면서도 주께 하듯 하는 마음, 작은 나사 하나를 조이면서도 온 정성을 쏟는 그 마음을 귀하게 보신다.

오늘 당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이 바로 성지(聖地)다. 컴퓨터 모니터 앞이든, 운전대 앞이든, 설거지통 앞이든 상관없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고, 오늘 하루치 주어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는 것. 불평 대신 감사를 선택하고, 요령 대신 정직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예배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드리는 그 투박한 예배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

매일말씀저널 | 신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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