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 팩을 꺼내면 상단에 선명하게 찍힌 검은 숫자가 눈에 들어온다. 유통기한. 그 날짜가 지나면 내용물은 상하고 버려져야 한다. 고작 몇천 원짜리 식료품에도 끝이 명시되어 있는데, 정작 천하보다 귀하다는 우리네 인생에는 종료 날짜가 적혀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자주 착각에 빠진다. 이 삶이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내일이 당연히 올 것처럼 뻔뻔하게 오늘을 낭비한다. 마치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아파트를 넓히는 데 목숨을 걸고, 썩어 없어질 물건들을 창고에 쟁여두느라 분주하다.
‘시한부’라는 단어를 들으면 병원 침대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낀 중환자를 떠올린다. 의사로부터 “앞으로 6개월 남았습니다”라는 선고를 받은 사람만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태어나는 순간, 첫 호흡을 내뱉는 그 찰나부터 우리는 모두 시한부 판정을 받은 셈이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시계바늘이 한 칸 움직일 때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단지 그 남은 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불확실성이 우리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이다. 죽음은 먼 훗날 재수 없으면 마주치는 교통사고 같은 게 아니라, 이미 우리 몸속에 내장된 확실한 예약 스케줄이다.
여행을 떠나 호텔에 묵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호텔 방에 들어설 때 그곳이 ‘내 집’이 아님을 명확히 인지한다. 아무리 뷰가 좋고 침구가 푹신해도, 그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체크아웃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자는 호텔 방의 벽지를 뜯어고치거나 가구를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 욕실 타일에 금이 갔다고 해서 땅이 꺼져라 한숨 쉬며 절망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잠시 쓰다 갈 곳이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관심은 ‘방’ 자체가 아니라, 그 방을 거점으로 삼아 경험할 ‘여행’ 그 자체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숙소에 잠시 머물러 온 여행자이면서, 마치 이곳의 영구 거주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잠시 빌려 쓰는 육체, 잠시 위탁받은 시간과 물질을 온전히 내 소유라 착각하며 소유권 주장에 열을 올린다. 옆방 투숙객과 방 크기를 비교하며 시기하고, 체크아웃할 때 챙겨가지도 못할 호텔 비품들을 가방에 쑤셔 넣으려 아등바등한다. 떠나는 날 카운터에 열쇠를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방 안의 인테리어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투숙객.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성경은 우리를 ‘나그네’와 ‘행인’, 즉 순례자라고 정의한다. 순례자와 방랑자의 차이는 목적지의 유무에 있다. 방랑자는 갈 곳이 없어 떠돌지만, 순례자는 돌아갈 본향이 있기에 길을 걷는다. 순례자의 배낭은 가벼워야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에 불필요한 짐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배낭을 열어보면, 여행에 꼭 필요한 생필품보다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장식품이나 무거운 돌덩이 같은 욕심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무게 때문에 정작 걸음을 떼지 못하고 길가에 주저앉아 헉헉댄다.
삶의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은 삶의 밀도를 높이는 가장 지혜로운 전략이다. 시간이 정해진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의 집중력을 떠올려보라. 종료 5분 전이라는 방송이 나오면,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문제 하나하나가 절실하고, 1분 1초가 보석처럼 귀하게 느껴진다. 인생이라는 시험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답안지를 제출하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순간, 지루하고 권태로웠던 일상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늘 아침 식탁에 오른 따뜻한 밥 한 공기, 투닥거리는 배우자의 잔소리,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살 한 줌. 이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것들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다. 죽음이라는 렌즈를 끼고 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원수도 그저 나와 같은 종착역을 향해 가는 불쌍한 여행 동무로 보인다. 아등바등 움켜쥐려 했던 돈이나 명예도, 체크아웃할 때 카운터에 다 놓고 가야 할 호텔 슬리퍼처럼 하찮게 느껴진다. 진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내 영혼에 새겨진 사랑의 기억,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작은 친절, 하나님과 동행했던 친밀함의 흔적뿐이다.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것은, 오늘을 진짜로 살게 하는 축복의 알람이다.
우리는 전세 계약이 만료되면 집을 비워줘야 하는 세입자다. 하나님이 “이제 그만 방 빼라”고 하시면, 군말 없이 열쇠를 돌려드리고 나가야 한다. 그때 집주인은 우리가 방을 얼마나 화려하게 꾸몄는지를 묻지 않으실 것이다. 대신 “내가 빌려준 그 방에서 누구와 얼마나 사랑하며 살았느냐”, “그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썼느냐”를 물으실 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 짐을 너무 무겁게 싸지 말자.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차림으로, 다만 내 옆에 걷고 있는 동행자의 손을 한 번 더 따뜻하게 잡아주자.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생각보다 짧고, 해는 생각보다 빨리 저문다. 돌아갈 집이 있는 순례자는 길 위에서 노숙하지 않는다. 그저 부지런히, 그리고 감사히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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