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성경] 로마 제국의 밤 — 세상이 가장 어두워진 순간 (1)

역사는 언제나 낮의 이야기로 기록되지만 사람의 영혼을 바꾸는 장면은 대부분 밤에 일어났다. 낮에는 제국의 깃발이 햇빛을 받았고 개선 행렬의 금속 소리가 길 위를 가르며 지나갔다. 시장의 고함과 세리의 목소리와 군인의 발걸음이 뒤섞여 하나의 풍경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 소란 속에서 오늘도 어제처럼 살아남기 위해 흥정하고 웃고 분노했다.

그러나 해가 산 뒤로 넘어가고 집집마다 문이 닫히면 그제야 이 땅의 진짜 공기가 드러났다. 로마의 밤은 조용한 평화가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눌림으로 가득한 시간이었고 사람들은 그 눌림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며 서서히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갔다.

유대의 아이가 낮에는 히브리어로 율법을 외우다가도 장터에 나가면 억양이 다른 언어가 자기 귀를 점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라틴어와 헬라어가 섞인 군인의 명령이 공기를 가르고 세금을 매기는 숫자는 로마의 계산법으로만 이해되었고 동전의 얼굴에는 모세도 다윗도 아닌 황제가 새겨져 있었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던 입술이 땅의 지배자를 부르도록 강요받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두 개의 시간을 살았다. 성전과 회당에서의 시간과 거리와 집과 시장에서의 시간. 마음은 한 하나님을 붙들고 싶었지만 몸은 다른 주인의 언어에 길들여지는 시대였다.

밤이 오면 이 둘 사이의 간격이 더욱 또렷해졌다. 낮에는 계산과 생존이 앞섰지만 밤에는 질문이 앞섰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이 택하신 민족이 이토록 짓밟히고 있는지. 왜 약속받은 땅에서 이방 군대의 발소리가 더 당당한지. 어린 아이의 눈에도 이해할 수 없던 모순이 해가 지면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이 질문을 말로 꺼내지 않았지만 침묵은 이미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고 그 침묵 속에서 다음 세대의 마음은 설명되지 않은 허기를 품고 자라났다.

로마 제국은 길을 만들고 질서를 세웠고 바다를 하나의 호수처럼 통제하며 자신이 세상에 선물을 주고 있다고 믿었다. 무역은 활발해졌고 소문은 멀리까지 퍼져갔으며 사람과 물건과 정보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오갔다. 그러나 이 소통의 길 위에 가장 먼저 실려 나간 것은 진리가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반란의 소문은 잔혹한 진압의 이야기와 함께 퍼져갔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의 모습은 항구와 도시와 촌락을 잇는 길 위에서 하나의 경고문처럼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 경고를 한 번만 보면 충분히 이해했다. 이 시대에 잘 산다는 것은 양심을 조금씩 저당 잡히고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을.

유대 땅에서만이 아니라 제국 전체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밤을 견디고 있었다. 노예는 자기 이름이 지워진 삶을 밤마다 되짚으며 언제부터 자신이 물건처럼 취급되었는지 기억하려 했고 패전한 민족은 옛 신들의 이름을 속으로만 부르며 언젠가 다시 일어날 날을 상상했다.

제국의 중심부에서조차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한순간에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을 숨기고 살았고 황제의 자리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대의 권력인 동시에 가장 깊은 고립의 자리이기도 했다. 낮에는 승리의 월계관이 빛났지만 밤이 되면 그 무게만 남았다.

유대의 경건한 자들은 이 밤을 단순한 역사적 불행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오래된 예언의 언어를 부드럽게 더듬으며 지금의 어둠이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조용히 헤아렸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언제나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완전히 떠나셨거나 아직 말하지 않으셨거나. 둘 중 어느 쪽이든 사람의 마음에는 버틸 수 없을 만큼의 간격이 생겼다.

누군가는 이 간격을 견디지 못해 체념 속으로 내려갔고 누군가는 더 큰 분노로 치달았으며 또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하나의 방패로 세워 그 틈을 가려보려 했다. 계명과 전통을 더 촘촘하게 엮어 하나님을 지키려 했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밤부터인가 사람들 안에서 조금 다른 종류의 허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단순히 정치적 해방을 향한 갈망이 아니었고 더 나은 생활 수준에 대한 욕망만도 아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결핍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렇게까지 침묵하시는지 묻다가 결국 다른 질문에 닿게 되는 지점.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이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주실 수는 없는지 묻게 되는 지점. 그 허기는 율법을 더 많이 아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았고 제국의 제도를 더 잘 활용한다고 해서 채워지지도 않았다. 그 허기는 누군가 자신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과 비슷했고 누군가 이 밤의 의미를 설명해주기보다 함께 견뎌주길 바라는 갈망과 닮아 있었다.

세상의 밤이 가장 깊어질 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착각에 빠진다. 하나는 이 어둠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이미 충분히 어둠에 익숙해졌다는 착각이다. 익숙함은 때로 절망보다 더 위험했다.

사람들은 제국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대신 자기 영혼의 언어를 잊어갔고 세상의 권력에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우는 대신 그 권력의 기준으로 자기 존재를 재기 시작했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면 실패자였고 이 기준 안으로 들어가면 신실함마저도 성공의 도구가 되었다. 밤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번져갔고 어느새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이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은 이 밤을 보고 계셨다.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더 깊이 더 오래 이 어둠을 바라보고 계셨다. 인간의 눈에는 제국의 힘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 제국은 거대한 무대 장치에 불과했다. 참으로 준비되고 있던 것은 무대 위 인물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조용히 다듬어지는 한 사람의 생애였다.

사람들은 로마의 역사를 말했고 역사가들은 황제의 이름을 세세히 기록했지만 하나님은 눈에 띄지 않는 마을의 골목과 아무도 관심 갖지 않던 가정과 사람들의 깊은 한숨을 더 오래 바라보고 계셨다. 그분이 준비하신 변화는 늘 그랬듯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 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품은 어둠이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해 말하기보다 어둠에 익숙해지는 법을 먼저 배웠지만 그 익숙함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세상이 더는 버틸 수 없던 때. 역사가 가장 어두워 보이던 그 시기에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한 생명을 준비하고 계셨다. 사람은 그 준비를 알아보지 못했고 자신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분명히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다림이 자라고 있었다.

이 기다림이 바로 로마 제국의 밤을 관통해 흐르던 보이지 않는 강이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강은 이미 흐르고 있었고 곧 한 아이의 울음으로 그 물소리가 세상 위로 터져 나오려 하고 있었다.

매일말씀저널 | 스토리 성경

PHP Code Snippets Powered By : XYZScripts.com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