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란 무엇인가, 지금 여기에서의 통치 (2)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

예수님의 공생애는 단 한 가지 메시지로 압축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이다. 복음서가 기록한 예수님의 첫 설교는 매우 간결하지만, 그 내용은 시대를 뒤흔드는 선언이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4:17) 이 말씀은 단순한 경고도 아니고, 개인의 도덕 개선을 촉구하는 훈계도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권위 있는 선포였다.

우리는 종종 ‘천국’이라는 단어를 죽은 이후에 가는 장소로만 이해하지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하늘나라’(헬라어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는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림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실질적으로 통치하시는 현실적 영역이다. 예수님의 선포는 이 나라가 먼 미래에나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내면의 변화만이 아니라, 현실 질서의 전복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이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실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나라의 성격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 들린 자를 자유케 하시며, 사회적 죄인들과 식탁을 함께 하신 일들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이적과 치유는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세상이 어떻게 회복되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적 징표였다.

하나님 나라는 강압적인 지배가 아니라, 회복과 화해, 자비와 정의의 통치였다. 예수님은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정죄하던 바리새인들과는 달리, 상처받은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소외된 이들을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셨다. 그의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등급을 나누지 않았고, 힘 있는 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더 가까웠으며, 스스로 의롭다 여기던 자들보다 세리와 죄인들에게 먼저 임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신 시대는 로마 제국의 강력한 통치 아래 있었다. ‘복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는 로마 황제의 즉위나 전쟁 승리와 같은 정치적 사건을 알릴 때 사용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용어를 하나님의 통치 선포로 바꾸어 사용하셨다. 이는 명백한 체제 전복의 메시지였다. 즉, 세상의 왕들이 통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은 개인 구원을 넘어서 사회와 역사 전체를 향한 선언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자주 비유로 설명하셨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등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드러낸다. 그 나라는 작고 미미하게 시작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겉으로 보기에는 연약하지만, 그 속에 담긴 능력은 이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힘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무력과 위계로 움직이지 않고, 관계와 자비, 정의와 평화로 확장되는 나라였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고, 종교 권력자들에게는 위협이었다. 예수님은 회당 중심의 율법 해석을 넘어, 삶 전체에 영향을 주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가르치셨다. 그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명령 뒤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강조하셨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 너머에 있는 마음의 정결함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단지 종교적 규범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재편성하는 존재의 전환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 나라의 왕이심을 숨기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 왕위는 금으로 만든 왕관도 아니었고, 백마를 탄 개선장군의 자리도 아니었다. 예수님의 왕위는 십자가였다. 그는 군중의 환호 대신 조롱과 침묵을 택하셨고, 권력을 통한 통치가 아니라 자기 희생을 통해 다스리셨다. 이는 세상의 왕권과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의 왕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지금도 우리에게 도전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의 방식으로 통치받고 있고, 세상의 질서 속에 갇혀 있다. 교회마저도 때때로 힘과 숫자, 영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정의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는 힘과 성취의 나라가 아니라, 회개와 낮아짐, 섬김과 진실의 나라였다. 이 나라는 먼저 자신을 비우는 사람에게 열리고,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지 않는 이들에게 임한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이 땅에 임한다는 것은, 단지 위로받는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전체를 재정비하라는 초대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분의 백성들이 그 통치를 따를 때 비로소 드러난다. 그 나라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된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이셨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그 나라의 흔적을 삶 속에서 증언해야 한다.

사도행전의 실천과 교회의 실패, 그리고 회복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나라의 성격을 몸소 보여주신 후,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단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그 나라를 살아내라’는 요청이었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사명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공동체의 구조로 어떻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언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는 약속이었다. 여기서 ‘증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드러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받고 단순히 선포자가 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살아내는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한 후, 초대교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떡을 떼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 가진 것을 나누기 시작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사도행전 2:44-45)라는 구절은 단순한 공동생활의 미화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실적 구현이다. 이 공동체 안에서는 소유가 중심이 아니었고, 권력이 계급을 나누지 않았으며, 누구나 존중받고 존귀히 여겨졌다.

이러한 공동체는 분명 시대를 초월한 하나님의 통치 모델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제국의 방식으로 다스려지고 있었지만,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의 방식, 즉 섬김과 나눔, 회개와 화해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세상의 논리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살아감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실천은 곧 한계에 부딪힌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동체 내에 위선이 나타났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이 일어났으며, 지도자 중심의 구조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초대교회 안에도 진실하지 못한 헌신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겉으로는 공동체를 위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위한 욕망을 감추고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외형이 아니라 진실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이 사건은 경고한다.

이후 바울과 베드로, 야고보 등 사도들 사이에서도 이방인 선교와 율법 준수 문제로 긴장이 생기기 시작한다. 교회는 점차 분열되고,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는 위기를 맞는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연약함과 불완전함 속에서 얼마든지 그 나라의 본질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성령의 충만함은 유지되지 않고, 언제든 다시 제도화, 권력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사도행전의 전체 흐름을 보면, 실패와 갈등, 위선과 실수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공동체를 이끄시고, 새로운 회복의 길을 열어가신다. 예를 들어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와의 긴장을 넘어서면서도, 더 넓은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끈다. 성령은 한 지역, 한 민족에만 머무르지 않고, 복음을 경계 밖으로 이끄신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특정한 민족이나 문화, 제도 안에 갇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는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백성을 통해도 일하신다. 완전한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나라를 이루신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메시지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완벽함에 기대어 세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매 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는 공동체를 통해 확장된다.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교회보다 훨씬 복잡한 현실 속에 있다. 제도적 안정성과 숫자적 규모는 갖추었지만, 정작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희미해지고 있다. 많은 교회가 영향력을 말하지만, 정직하지 못하고, 화려하지만 공동체성이 약하며, 열심은 있으나 방향을 잃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그 나라의 질서와 방식은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시 사도행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단지 기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몸부림을 본다. 거기엔 실패도 있었고, 부끄러운 갈등도 있었지만, 여전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통치가 있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었으며, 회개하는 자들로부터 새 길이 열렸다. 이 길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열려 있다.

하나님 나라는 완벽한 사람을 통해가 아니라,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임한다. 예수님께서 씨를 뿌리셨고, 제자들이 그것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 우리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일 때, 그 모임이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삶의 자리라면, 하나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도 임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말씀저널 |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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