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없는 예배 속, 말씀은 여전히 살아 있는가

말씀이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듣고는 있지만 반응이 없고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삶은 움직이지 않는다. 감동은 사라졌고 예배는 습관처럼 이어진다. 자리를 지켜도 의미는 희미하고 기도는 조용히 끝난다. 이런 상태를 성도들은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견딘다. 죄책감은 마음 안에 쌓이고 영혼은 무뎌진다. 말씀을 사모했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지금은 아무 감정도 없다.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뜨거움이 식었다는 자각보다 더 힘든 건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 기억은 비교가 되고 비교는 실망이 되고 실망은 죄의식으로 번진다. 어느새 사람들은 ‘내가 식었구나’ ‘문제가 있나 보다’라고 결론을 짓는다. 그러나 감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신앙의 실패를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감정을 요구하지 않으시며 말씀은 감동의 유무로 판단되지 않는다. 믿음은 오히려 감정이 무너졌을 때 시작된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아도 자리를 지키는 일 손에 감각이 사라졌어도 성경을 펼치는 일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도 무릎을 꿇는 일. 그 모든 것 안에 진짜 복음이 자라고 있다.

신앙의 무감각은 종종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지쳐서 그렇고 어떤 경우는 감당하지 못한 상실이나 외로움 속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때때로는 아무 외적 원인 없이 단지 신앙의 흐름 안에서 찾아온다. 오래 믿어 온 교우들 중에는 이런 ‘말씀이 멀어지는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매주 예배당에 앉아 있지만 말씀이 피부에 닿지 않고 찬송은 메아리처럼 흐른다.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교회를 떠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자리로 내려가는 중이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책망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함께 계신다. 겉으로는 건조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침묵 속의 순종이 이어지고 있다.

성경은 말씀을 씨앗에 비유했다. 뿌려진 씨앗은 바로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땅속에서 먼저 썩는다. 겉으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고 실제로도 아무 반응이 없는 시기가 지속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둠 속에서 자라게 하신다. 말씀도 마찬가지다. 감동 없이 들리는 설교 반복되는 기도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찬송 가운데서도 말씀은 살아 있다. 그 말씀은 성도의 심령을 천천히 뚫고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견딤이 없는 감동은 쉽게 증발한다. 그러나 감정 없는 순종은 뿌리 내린 믿음으로 남는다.

교회 안에서 은혜를 말할 때 우리는 종종 뜨거움을 떠올린다. 울었는지 떨렸는지 새롭게 다짐했는지 묻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요한 자리를 지키는 자를 기억하신다. 감동 없는 순종이야말로 성숙의 징표일 수 있다. 예배에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하나님은 아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안다.” 느껴지지 않아도 복음은 진리다. 움직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마음이 무뎌졌다고 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중일 수 있다.

다윗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고 고백했다. 진토는 가장 낮고 무기력한 상태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말씀으로 소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자리에 여전히 말씀을 기대하는 마음. 바로 그것이 살아 있는 믿음이다. 기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도 앉는 자리 아무 감정 없이 드리는 찬송 메마른 듯 보이는 응답 없는 시간 안에서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신다. 거룩은 감동에 있지 않다. 감정을 넘어서는 순종 감동 없이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 안에 하나님의 임재는 머문다.

말씀이 지겹게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믿음의 여정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골짜기다. 그 순간을 지나며 성도는 감정으로 믿음을 판단하지 않게 된다. 은혜가 울음으로만 오지 않는다는 사실 말씀은 감정이 깨어날 때보다 침묵할 때 더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진리를 배운다. 말씀은 사라지지 않는다. 감동은 오고 가지만 복음은 남는다. 그리고 그 복음은 삶의 깊은 곳에서 여전히 사람을 붙든다. 예배당에 앉은 그 모든 이들이 감정의 유무를 떠나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사실 바로 거기서 신앙은 다시 시작된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시기를 지나면서 어떤 이들은 예배를 떠나고 어떤 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킨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감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감동이 없어진 예배 말씀이 더 이상 살아 움직이지 않는 말씀으로 느껴질 때 사람들은 그 자리를 회의의 공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내가 변한 걸까’라고 묻지만 시간이 지나면 ‘여긴 더 이상 내 자리가 아닐지도 몰라’라고 결론내린다. 그리고 떠난다. 그렇게 비워진 자리는 말없이 남아 있는 이들의 몫이 된다. 남아 있는 이들은 더 이상 감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남은 자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내 귀에 들리는 말씀의 울림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계속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느껴지지 않아도 예배를 드리고 감동이 없어도 기도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으며 예배당으로 향한다.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로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보고 계시리라는 단순한 믿음 그것이 이들을 그 자리에 머물게 한다.

감동이 없을 때 순종을 계속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에 대한 신뢰다. 하나님이 여전히 내 곁에 계신다는 사실이 내 감정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를 이끈다. 말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문제는 내 안의 피로와 무감각이 진리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그런 무감각의 시기를 지나도록 허락하신다. 모든 신앙 여정이 감동과 감격 속에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신다. 신앙은 감정을 지나야 진짜가 된다. 감정을 기반으로 쌓인 신앙은 금방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감정 없이도 순종하는 삶은 절대 쉽게 꺾이지 않는다. 말씀은 들리지 않아도 살아 있고 하나님은 응답이 없어도 계신다. 그 진리를 붙드는 믿음 그것이 감동 없는 시기를 견디는 이들의 고백이다.

감동이 없어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자극이 아니다. 더 감성적인 설교 더 깊은 찬양 더 울리는 기도문이 그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감정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복음이다. 감정이 사라져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붙들고 계시다고 전해주는 말씀이다. 신앙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그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감동이 사라졌을 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에 더 단단해진다. 이들은 말한다. “말씀이 지겹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고백은 자랑이 아니라 은혜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셨기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 역시 무감각의 시간을 지나왔다. 엘리야는 열심히 싸운 끝에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았고 요나는 말씀을 전한 뒤 아무런 변화도 기대하지 않은 채 멀리 물러났다. 욥은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시편 기자들은 응답 없는 하늘을 향해 탄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 떠나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한 불만조차 하나님께 아뢰었다. 감동은 없었지만 관계는 유지됐다. 거기서 다시 신앙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에게는 떡과 물을 보내셨고 탄식하던 시편 기자의 기도는 성경 안에 말씀으로 기록되었다. 무감각의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가치하지 않다. 오히려 그 시간이 지나야 더 깊이 들릴 수 있는 말씀이 있다.

오늘 교회는 여전히 “감동적인 설교” “감동적인 간증” “감동적인 찬양”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교회가 감동만을 추구할 때 복음은 감정에 갇히게 된다. 복음은 감동이 아니라 진리다. 진리는 상황과 감정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감동 없는 자리에도 진리는 있다.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믿음을 가진 이들이 오늘도 조용히 예배당을 지킨다. 교회의 본질은 화려한 열정이 아니라 그런 고요한 충성에 있다. 교회를 붙들고 있는 건 감동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견고한 반복이다. 감동 없이 말씀을 듣고 뜨거움 없이 순종하는 그 반복이 교회를 살아 있게 한다.

말씀이 지겹게 느껴지는 그날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들리지 않아도 감동이 없어도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은 당신을 떠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내 앞에 있다.” 감정이 없지만 떠나지 않은 자 감동이 없지만 순종을 이어가는 자 응답이 없지만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자. 그들을 하나님은 보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하신다.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 지금 아무런 감정이 없어도 말씀은 계속 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반드시 자란다. 그 침묵 속에 하나님의 일하심은 이미 시작되었다.

매일말씀저널 | 오늘의 세상 말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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