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이 육체의 가시로 인해 고통받던 순간, 하나님께 받은 응답은 매우 단호하면서도 깊은 위로였다. 바울은 그 고통이 자신의 사역에 방해가 되고, 복음 전파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기에,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고통의 제거 대신, 은혜의 충분함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바울이 더 강해지기를 기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약한 그대로 있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드러내길 원하셨다. 이 구절은 단지 바울 개인의 간증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모든 믿는 이들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하다. 고통은 기도로 없애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해야 할 과정인가.
하나님이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무의미한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고린도후서 12장 앞부분에서 바울은 자신이 셋째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특별한 체험을 언급한다. 그는 이 경험이 자칫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될 만큼 그의 사역과 신체에 심각한 방해가 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훈련이었다.
즉, 고난은 바울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게 만드는 통로였다. 우리에게도 고난은 종종 그런 역할을 한다. 자아가 무너지고, 세상의 의지처가 무너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절박하게 붙들게 된다. 그 은혜는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을지라도, 고난 속에서 살아갈 힘을 제공한다.
은혜는 감정이 아닌 실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 말은 마치 막연한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은혜는 단지 마음을 달래는 말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실제적인 능력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는 하나님의 공급이다. 바울은 그 은혜가 추상적인 위로가 아닌, 육체의 고통과 영적 전쟁을 이겨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원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기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무게가 감당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성경의 은혜는 현실을 초월하는 신비가 아니라, 현실 안에 뿌리내린 능력이다.
기도 응답의 방식은 항상 제거가 아니다
바울은 세 번이나 같은 기도를 반복했다. 그는 믿음으로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나 응답은 예상과 달랐다. 하나님은 문제를 없애주시지 않고, 문제를 감당할 은혜를 부어주셨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기대하는 응답 방식과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문제가 사라지는 것을 응답으로 여긴다. 병이 낫고, 길이 열리고, 막힌 문이 열릴 때를 응답이라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문제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그 문제를 견디는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것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 이것은 단순히 수동적인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에서 나오는 성숙한 순종이다. 어떤 기도는 즉각적인 해결로, 또 어떤 기도는 평생의 동행으로 응답받는다. 그리고 그 모든 응답 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자리다
하나님은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세상의 기준과 정반대되는 진리다. 세상은 강한 자를 높이고, 성공한 자를 따르며, 약함을 수치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함을 능력의 그릇으로 사용하신다. 약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의지하게 되며,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심을 경험하게 된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냈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것이 복음의 방식이다. 하나님은 자격 있는 자를 쓰시지 않고, 부르신 자에게 자격을 입히신다. 약함이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약함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약함은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자리다.
오늘, 은혜가 충분하다는 고백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말씀은 단지 고통을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기에 충분하다는 선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러 형태의 가시가 있다. 끊이지 않는 질병, 끝나지 않는 불안, 회복되지 않는 관계, 풀리지 않는 진로. 우리는 수없이 기도한다.
그리고 때로는 변화가 없어 낙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지금도, 여전히, 나의 은혜가 네게 족하다.” 그 은혜는 어제도 족했고, 오늘도 족하며, 내일도 족할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신뢰할 때, 삶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아도 마음의 평안은 새로워진다. 진짜 강함은 환경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환경이 바뀌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믿음, 그것이 강한 믿음이며,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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