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란 무엇인가, 지금 여기에서의 통치 (1)

 

종말론적 천국이 아닌,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천국, 종말, 구원 등의 개념과 뒤섞이면서도, 일상과는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가장 먼저 선포하신 내용이 바로 이 ‘하나님 나라’였다. 그분은 단지 죽은 후에 가는 장소를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지금 여기,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하셨다.

예수께서 첫 사역으로 전하신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이었다. 이때 사용된 ‘천국’이라는 표현은 단지 하늘나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곧 하나님의 주권과 질서가 이 세상 가운데 도래했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종말에나 실현될 비현실적 환상이 아니라, 오늘과 같은 혼란하고 부조리한 현실 속에 침투해 들어오는 하나님의 질서였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 선언의 실제적인 구현이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자가 자유함을 얻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회복되는 사건들은 단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증표였다. 이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떤 방식으로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왕권이 실질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신약 신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표현은 이 사실을 잘 설명해준다.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시작되었고,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여전히 기다려야 할 미래의 사건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긴장 속에 살아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하나님 나라가 단지 시간적인 미래에 머무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삶의 자리 안에서도 구현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임재이며, 그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 저 너머의 이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나타나야 할 실제적 질서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 신앙의 방향을 바꾼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죽음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미래의 보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와 관련된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이 우리의 선택과 관계, 말과 행동 속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땅 위에서의 삶이 곧 하나님 나라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개념을 오해하거나 축소하여 이해한다. 하나님 나라를 단지 ‘내가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 제한하거나, 혹은 ‘세상이 악하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종말만 기다리자’는 식의 무기력한 신앙으로 변질시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성경은 그런 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탈출하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실 안에 깊숙이 개입하여, 부조리와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구현되도록 만드는 능동적인 역사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여러 비유로 설명하셨다. 겨자씨, 누룩, 밭에 감추인 보화, 값진 진주 등 그 모든 비유는 하나님 나라가 작고 보잘것없는 방식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세상의 질서를 뒤바꾸는 능력을 지닌 질서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나라는 권력이나 무력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와 회복, 진실과 정의, 사랑과 섬김을 통해 확장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교회라는 제도나 특정한 종교 행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지만, 그것을 넘어 가정과 직장, 도시와 마을, 사회의 가장 작은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용서를 실천하고, 정의를 선택할 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위로 올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이 땅으로 내려오는’ 나라다. 우리는 이 나라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임하고 있는 나라를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아는 신자는 삶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 시간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말의 무게가 달라지며,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진다. 세상이 따르는 규칙이 아닌,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방식에 따라 살아가는 삶.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방식이다.

이 나라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믿음의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과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길이다. 힘 있는 자가 아니라 낮아지는 자가, 성공한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따라 사는 이들이다.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서 임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단순한 신학적 수사나 감성적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이 땅의 질서, 인간의 관계, 그리고 삶의 방식이 변화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그것은 가장 먼저 교회와 신자의 삶 속에서 드러난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부활 이후, 그분이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그들은 로마 제국이라는 압도적인 정치 질서 안에서, 새로운 통치를 고백했다.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은 단순한 종교적 표현이 아니라, 당시 체제를 향한 강력한 도전이었다. 예수가 주님이라는 말은 곧 황제가 주님이 아니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통치를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대안 공동체로 시작되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구현은 아니지만, 그 나라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며 ‘증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떤 것인지를 교회를 통해 세상이 엿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교회가 경쟁과 위계, 차별과 억압, 권위주의와 형식주의에 물들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가 아니라 세속의 반복일 뿐이다. 교회는 섬김과 나눔, 용서와 회복, 진리와 공의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일상에서 실현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삶을 통째로 변화시킨다. 신자는 단지 교회 출석 여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그 통치는 우리의 선택을 바꾸고, 가치관을 재구성하며, 시간과 물질, 관계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손해를 감수하고도 정직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였다는 표시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자리는 별다른 표식이 없다 해도, 그 안에 분명한 변화의 흔적이 있다.

예수께서 하신 하나님 나라의 비유들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보기에는 작고 미미하며, 천천히 자라나지만, 결국 전체를 변화시키는 특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겨자씨처럼, 누룩처럼, 하나님 나라는 겉으로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안에 생명력과 변혁의 능력이 있다. 신자의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속에서 뿌리내리는 방식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간다. 세상의 원리는 자기를 지키고, 더 많이 가지며, 더 높이 오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반대다. 자기를 부인하고, 덜 가지며, 더 낮아지라고 요청한다. 이 역설적인 삶의 방식은 단순한 윤리적 고상함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주신 통치 방식이다. 그는 왕이시지만 발을 씻기셨고, 심판주이지만 죄인을 용납하셨다. 그분은 강함으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약함으로 이기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칫 신앙을 사적이고 감정적인 영역으로 한정짓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준다. 가정에서의 말투, 직장에서의 태도, 소비와 시간 사용, 인간관계의 우선순위까지도 모두 그분의 주권 아래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삶의 어느 부분도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 속에서 고립되거나 도피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 한복판에서 살지만, 세상의 방식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불의를 목격하고도 침묵하지 않으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이들이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 나라의 기운이 이 땅 위에 퍼지기 시작한다.

교회는 이들을 위한 공동체여야 한다. 단지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식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훈련시키며 회복시키는 장소여야 한다. 예배는 단순히 감동을 주는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순복하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설교는 단지 교리를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전환시키는 부르심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은, 단지 희망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실제적 현실이다. 한 도시가 정의로운 지도자를 만났을 때, 한 학교가 용서와 배려를 배운 교사에 의해 변화될 때, 한 가정이 사랑과 인내를 선택하는 부모에 의해 다시 세워질 때, 그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물론 이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불의와 고통, 상처와 분열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은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반드시 완성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 나라는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모든 눈물이 닦이고, 모든 상처가 치유되며, 모든 불의가 심판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순종하는 자들의 삶을 통해 나타난다. 그 통치는 기적처럼 보이진 않지만, 확실하고 분명하게 세상 속을 바꾼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지금 이곳에서 선포되고 실천되는 현실이며,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진실로 경험될 수 있는 실제다.

매일말씀저널 |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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