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겉으로는 질서 속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혼돈 위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다. 기술은 빠르게 진보하고 정보는 순식간에 흐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복잡해진다. 무엇이 중요한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마치 방향을 잃은 우주 속 입자처럼 흩어져 있다.
삶의 시작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가정의 깨어짐 속에서, 또 누군가는 가난과 실패 속에서, 혹은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출발한다. 출발은 언제나 정돈된 무대 위가 아니다. 바닥은 공허하고 혼란스럽고 눈앞은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일 때가 많다. 그러나 빛은 그런 곳에 임한다. 어두움이 깊을수록 빛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리되지 않은 시작점, 설명할 수 없는 상처 위에 처음으로 한 줄기 질서가 내려온다. 그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내 안에서부터 말씀이 깨어날 때 마음은 방향을 얻고 흐릿했던 윤곽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무엇이든 처음은 어둡다. 불안하고 흐려진 마음에 ‘아무것도 안 될 것 같다’는 절망이 들 때, 그것이 오히려 빛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삶이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 여전히 이 삶을 창조하고 있다는 증거다. 혼란스러운 마음, 정리되지 않은 감정, 설명되지 않는 상처. 그것들은 어쩌면 아직 창조가 진행 중이라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없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풍성하고 넉넉한 곳보다 텅 비고 무너진 곳에서 시작된다. 계획이 무너지고 기대가 사라졌을 때, 오히려 그 지점에서부터 새 질서가 생겨난다. 그것은 억지로 짜 맞춘 계획표가 아니라 말씀으로 하나씩 자리잡는 질서다. 마치 이름 없는 것들이 하나씩 불리우고 모양 없는 것들이 제 의미를 찾아가는 것처럼. 혼돈은 말씀이 들어올 수 있는 여백이 된다.
우리는 결과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구조를 먼저 세우신다. 보이는 것을 먼저 주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경계를 먼저 정하시고 질서를 마련하신다. 그분이 주시는 시작은 대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시작은 다르다.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내면의 구조가 바뀌는 일이다. 삶이 재정렬되고 고통과 죄의 패턴이 다시 써지며,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말씀이 선명해진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시작하신다. 설명이 아니라 선언이고, 계획이 아니라 명령이다. 복잡한 논리 대신 단순한 진리 한 문장이 혼란의 한가운데를 꿰뚫는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말씀은 이미 세상을 흔들고 있다. 혼돈은 스스로 정리되지 않는다. 질서는 외부에서 말씀이 임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삶의 혼란도, 아직 말씀이 오기 전의 공간일지 모른다. 아무리 정돈해도 다시 무너지는 관계. 아무리 채워도 다시 비어버리는 성취. 아무리 기도해도 침묵으로 돌아오는 시간. 그것들은 낭비된 시간이 아니다. 질서가 시작되기 직전의 무대다. 가장 깊은 혼돈일수록 가장 단단한 빛이 들어올 수 있다.
말씀이 먼저 자리를 잡고 나서야 존재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나 더 정교한 계획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내면의 무너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위에 다시 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말씀은 빛이다. 그 빛은 질서다. 그리고 그 질서 위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세상을 새롭게 빚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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