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난 이해, 고통 속의 부르심 (3)

고난과 십자가, 예수님의 고난과 신자의 부르심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이해하는 데 있어, 십자가는 중심에 서 있다. 고난은 세상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이지만, 신자의 고난은 본질적으로 십자가와 연결될 때에야 그 의미를 분명히 한다. 고난을 피하려는 삶과 고난을 감내하는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차이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그분이 겪으신 고난은 단순한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었고, 구속사의 중심이었으며, 새로운 인간 존재 방식을 여는 문이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고난은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의 기록이 아니다. 채찍과 조롱,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은 분명 극심한 육체적 고통이지만,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고난은 사람들의 외면, 제자들의 배신, 그리고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겪는 내면의 절망이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외침은 예수님께서 시편 22편을 인용한 말씀이지만, 단순한 인용 이상의 절규였다. 하나님과 단절된 듯한 그 깊은 절망의 순간, 예수님은 신자의 고난을 가장 깊은 자리에서 경험하셨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분이 능력이 없어서 당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분은 고난을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으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그 기도의 결론은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였다. 예수님은 고난을 선택하셨다. 이는 단지 수동적 희생이 아니라, 능동적인 순종이다. 그분의 고난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린 믿음의 결정이었다.

신자는 이 십자가의 길에 부름받은 사람이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단지 예수님의 몫이 아니라, 신자의 길이기도 하다. 신자의 고난은 세상의 우연이 아니라,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자에게 불가피하게 주어지는 길이다. 이 고난은 무의미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방식에 참여하는 고백이다. 십자가는 고난을 미화하지 않지만, 고난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믿음을 증명한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은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피하고자 한다. 세상은 성공과 안락, 안정된 삶을 목표로 제시하고, 고난은 실패나 무능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심지어 교회조차도 복을 약속하고 형통을 강조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외면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그 길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하는 길이다.

신자의 고난은 예수님과의 연합 속에서 이해될 때, 비로소 그 깊은 의미를 가진다.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로서, 그의 부활의 권능도 알고자 한다.” 이는 고난 자체를 추구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과 더 깊이 연결되기를 원하는 신앙의 열망이다. 고난은 그분의 고난을 닮아가게 하고, 그분의 사랑을 더욱 실감하게 하며, 세상의 방식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살아가게 만든다.

이런 고난의 여정은 인간적으로 보면 불편하고 불리하다. 자기 부인의 삶,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 정의를 말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려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세상에서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이다. 세상은 그것을 약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강하다고 하신다. 세상은 손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생명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은 고난을 끝내는 길이 아니라,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게 하는 길이었다. 그 길은 무의미한 아픔을 구속사의 사건으로 바꾸고, 버림받음의 순간을 사랑의 증명으로 바꾸었다. 신자에게도 이와 같은 해석이 주어진다. 세상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의 순간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너와 함께 있고, 너의 아픔이 헛되지 않다고.

고난 속에서 신자는 다시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선다. 그분의 고난은 나를 위한 것이었고, 그 고난을 기억하는 순간 나의 고통도 헛되지 않게 된다. 신앙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며, 십자가를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혼자의 길이 아니다. 주께서 앞서 가신 길이고, 그 길의 끝에는 반드시 부활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고난을 넘어서는 생명의 길이다. 그분의 십자가는 실패와 처형의 도구였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여는 열쇠였다. 세상은 십자가를 약함으로 보았고, 제자들조차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도망치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이 고난은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라,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구체화된 사건이었다.

신자의 고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히 견디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일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자신이 받은 수많은 고난 채찍질, 투옥, 파선, 굶주림, 모욕을 나열하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자랑이 된다고 고백한다. 그는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히 만났고,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고난은 바울에게 있어 하나님을 향한 의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더욱 굳건하게 하는 통로였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베드로는 순교의 길로, 요한은 유배의 길로, 바울은 핍박의 길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고난을 피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신자의 삶에서 고난은 예외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본질적인 방식이다. 십자가 없는 제자도 없고, 고난 없는 부르심도 없다. 그 길은 외롭고 좁지만, 그 끝은 반드시 생명과 부활이다.

고난과 십자가는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십자가를 따른다는 것은 삶의 중심이 ‘자기’에서 ‘하나님’으로 옮겨진다는 뜻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세상의 방식 대신 예수님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다. 이것은 단지 윤리적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존재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기 보존과 자기 확장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내어주고, 손해를 감수하며, 다른 이를 위한 길을 택한다. 그가 걸어가는 길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 길 위에서 역사하신다.

현대 사회는 십자가의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경쟁과 속도, 성취와 결과가 중심인 세상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고난을 감내하는 삶은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다르다. 가장 낮은 자가 가장 큰 자이고, 섬기는 자가 으뜸이며, 생명을 얻는 길은 생명을 내어주는 데 있다. 십자가는 이 질서를 가장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원리에 참여하면서도, 그 중심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따라 살아간다.

고난은 신자의 믿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믿음은 말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실제 상황 속에서, 예측할 수 없는 손해 앞에서, 이유 없는 상처 속에서 그 진실이 드러난다.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지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불편을 감수하고, 자기 주장을 내려놓고, 사랑을 선택하는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십자가의 길이다. 이는 특별한 사명의 사람들만 감당해야 할 길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날마다 선택해야 할 일상의 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지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대신 질 수 없는 각자의 몫이다. 어떤 이는 질병으로, 어떤 이는 관계의 상처로, 어떤 이는 신앙 때문에 사회적 불이익을 겪으며 그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 십자가가 무겁고 버거워도,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먼저 걸으셨기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주께서 먼저 고난당하셨기에, 우리의 고난은 결코 외로운 길이 아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십자가에서 끝나지 않았듯, 신자의 고난도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십자가는 죽음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부활의 문이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며,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의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신자는 고난을 통해 연단되고, 연단 속에서 인내를 배우며, 인내 가운데서 소망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더 깊이 이끄시며, 더 넓은 사랑 안으로 초대하신다.

이 시대의 신자들은 고난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것은 과거에나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아내야 할 십자가의 길이다. 교회는 고난을 낡은 단어로 만들 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로 다시 회복해야 한다. 십자가 없는 복음은 없고, 고난 없는 순종도 없다. 그러나 그 길은 결코 헛되지 않다. 그 길 끝에는 주님이 계시며, 그분의 손에는 우리 눈물의 기록이 들려 있다.

매일말씀저널 |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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