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연결의 시대다. 모든 것은 선을 따라 하나로 묶인다. 정보는 흐름을 타고 세계 어디로든 전해지고 사람들은 물리적 거리를 초월한 소통 속에서 살아간다. 기계는 인간의 손을 대신하고 숫자는 감정을 해석하며 코드와 신호가 우리의 정체성을 말없이 기록한다 겉으로는 이것이 진보다. 우리가 과거에 꿈꾸지 못했던 편리함을 손에 쥐고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는 듯한 속도에 열광한다. 그러나 진보는 방향을 말해주지 않는다. 속도는 목적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
지금 이 시대의 연결은 단지 편리함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구조와 사유의 방식 인간에 대한 정의와 윤리의 기준마저 새롭게 구성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나로 묶일수록 개별성은 줄어들고 분별은 희미해진다. ‘하나됨’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성령의 연합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리를 무너뜨리는 기준 없는 일치를 가리킨다.
‘연결’이라는 명분 그 안에 숨어 있는 방향
세상은 언제나 ‘더 나은 삶’이라는 이름 아래 변화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진보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변화가 반드시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의 역사는 언제나 사람의 손으로 완성될 수 없었다. 하나님 없는 연대는 결국 교만으로 이어졌고 질서는 형식으로 남았으며 권력은 우상이 되었다. 오늘날 기술은 중립이라는 가면을 쓰고 인류를 이끈다. 그러나 기술이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지 그것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묻는 이는 많지 않다. 스마트한 시대 효율적인 시스템 완벽한 데이터 정합성. 우리는 이 단어들이 주는 안도감에 쉽게 안주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설계’가 있다. 우리의 선택을 도와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선택 범주를 줄이고 있다. 다양성은 제시되지만 실제 선택지는 유도된다. 사고는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방향 안에서만 허용된다. 기술은 인간의 윤리를 분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윤리가 아니다. ‘무엇이 편리한가’ ‘무엇이 안전한가’에 대한 판단이 곧 ‘무엇이 옳은가’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것은 은밀한 치환이다. 삶의 기준이 하나님에서 인간의 감각과 기술적 판단으로 옮겨지고 있다. 이 연결은 표면적으로는 자유지만 실상은 새로운 종속이다.
진리 없는 질서 믿음 없는 평화
지금의 흐름은 하나의 거대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언어는 통합되고 화폐는 디지털화되며 윤리와 규범은 전 지구적 통일을 향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전쟁과 빈곤을 줄이고 사람들 간의 이해를 돕는 유익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묻지 않는다. “이 흐름은 누구에 의해 무엇을 위해 설계되고 있는가?” 인류가 자율과 생존의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이 질서는 점점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구원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통해 배운다. 진리가 없는 평화는 오래 가지 않으며 하나님 없는 질서는 반드시 무너진다.
신자는 이 흐름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거부만으로 답이 될 수 없다. 단절로써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신자는 시대 속에 있으면서 시대를 거슬러 살아야 한다. 그 기준은 감정도 여론도 아닌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발을 인도하는 등불이며 이 세상의 가짜 빛을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광명이다.
말씀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연대
우리는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과 연결되느냐가 문제다. 세상의 흐름은 우리에게 익명성과 속도를 주지만 하나님은 이름을 부르시며 기다리신다. 세상은 우리를 하나의 정보로 묶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고유한 존재로 부르신다. 하나님 안에서의 연대는 다름을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조화를 허락하신다. 진리 안에서의 일치는 억압이 아니라 자유를 꽃피우는 질서다. 우리는 이 시대의 질서와 연대가 무엇을 지워버리는지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질서는 억지로 묶지 않는다.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열려 있지만 그 중심에는 반드시 십자가가 있다. 오늘의 질서는 연결을 외치지만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다. 진리 없는 질서가 오래 갈 수 없는 이유다. 신자는 단절을 선택하는 이들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보내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연결을 바라보되 말씀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연대를 추구하되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가를 점검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있다. 그러나 그 흐름은 중립적이지 않다. 신자는 분별해야 한다. 단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단 하나의 단어 아래 움직이고 있다. “연결”. 하지만 그 연결은 방향 없는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흐름이다. 그리고 흐름은 언젠가 목적지에 도달한다. 이 흐름 속에서 교회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신자는 어떤 방향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성경은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본다. 외형이 아니라 중심을 바라본다. 인간은 타락 이후 언제나 하나로 모이고 싶어 했다. 나눔보다 집중을 택했다. 다양성보다 통일을 꿈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시도를 종종 흩으셨다. 단일화는 질서처럼 보이지만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면 결국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연결된 시대 속에서 교회의 자리는 어디인가
오늘의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일 뿐 아니라 이 흐름을 분별할 마지막 경계선에 서 있다. 교회가 시대의 감각만 좇아간다면 세상의 거대한 흐름 안에 융화되고 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시대와 소통해야 하지만 시대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 교회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말씀이다. 기술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기술이 말씀이 아닌 기준을 제시하기 시작할 때 교회는 반드시 멈추어 서야 한다. 그리고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흐름이 과연 주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이 시대의 연결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곳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진리를 보전해야 할 공동체다.
구별된 연결을 향하여 분리 아닌 구별
‘구별됨’은 이 시대에서 가장 잊혀진 덕목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입고 같은 플랫폼을 쓰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한다. 다름은 위협이 되고 구별은 불편이 된다. 그러나 구별됨은 성경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 중 하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거룩한 백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라.” 이 구절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다. 존재 방식에 대한 명령이다. 신자는 연결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구별된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효율이 아닌 하나님이 바라시는 관계를 따라 연결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해 연결되고 말씀을 위해 연결되고 사랑을 나누기 위해 연결되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시스템과 다르다. 세상은 빠른 속도 간결한 정보 선형적 확산을 중요시하지만 교회는 느린 속도 깊은 교제 반복과 성찰의 리듬으로 움직인다. 오늘의 연결이 순간적인 접근을 중요시한다면 교회는 영원한 목적을 붙든다. 우리는 이 시대의 속도를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속도를 견뎌내며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는 존재다. 이 시대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지만 그 연결 속에 하나님은 없다. 정보는 많지만 진리는 부족하고 소통은 넘치지만 사랑은 메말랐다. 그래서 교회는 연결된 공간이 아니라 복음으로 묶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복음은 단지 전해지는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고 진리를 사는 태도이며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다. 오늘의 교회가 복음을 시스템처럼 다룬다면 이 시대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교회가 복음을 생명으로 관계로 순종으로 살아낸다면 그 자체로 거룩한 연결이 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말한다. “우리는 한 몸이요 많은 지체라.” 이 말은 단지 협력 구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 안에서의 연합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결을 말한다. 기술이 아닌 성령으로 묶인 공동체 알고리즘이 아닌 말씀으로 인도되는 연대 이것이 교회다.
묻지 않은 것에 대한 응답
지금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질문을 묻지 않는다. “우리는 왜 연결되는가?” “이 흐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신자는 이 질문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을 삶으로 말해야 한다. 이 세상은 늘 새로운 것을 쫓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말씀이 곧 길이고 기준이고 해석이다. 이 시대의 연결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 흐름은 분명한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목적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자율 효율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님을 지워가는가?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나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세상은 한 줄의 코드로 정체성을 정의하지만 하나님은 이름을 부르신다. 세상은 모든 것을 통합하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향해 목적을 두신다. 그 구별의 부르심 속에 신자는 시대의 연결을 새롭게 살아가야 한다. 진정한 연결은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땅과 하늘을 잇는다. 우리는 그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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