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되지 않은 것에서 시작된 모든 것
인류의 질문은 언제나 기원으로 향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과학은 진화와 우주의 팽창을 이야기하고, 철학은 원인과 존재의 이유를 따져왔지만, 그 모든 탐구는 결코 끝에 닿지 못했다. 성경은 이 끝없는 질문 앞에 단 하나의 선언으로 답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한 문장은 우연의 세계에 던져진 인간의 불안을 넘어서는 분명한 시작을 보여 준다. 빛과 어둠이 갈라지고, 물과 땅이 구분되며, 혼돈이 질서로 전환될 때, 우리는 이 세계가 결코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주한다. 말씀으로 세상을 열어 가신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인간은 단순한 먼지 조각이 아니라 창조의 일부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흙에서 빚어진 생명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지으셨다. 인간의 기원은 흙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적 연약함을 보여 준다. 권세를 누리고 지식을 자랑하며 첨단 기술을 다루는 오늘의 인간조차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연약함은 동시에 존엄의 기원이다. 왜냐하면 그 흙이 하나님의 손에 빚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가치는 사회적 성취나 물질적 소유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창조주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인간의 존엄을 결정한다. 인간은 스스로 신격화할 수 없고,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호흡으로 불어넣으신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은 흙으로 형체를 빚으신 후,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그 순간 인간은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에서 살아 있는 영적 존재로 변했다. 생명은 본능이나 우연한 화학 반응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호흡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숨결 하나하나가 은혜이며, 하루하루가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나 인간은 종종 이 사실을 망각한다. 숨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교만은 자리 잡고 불안은 따라온다.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라는 착각은 결국 절망으로 이끈다. 반대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과 교제하며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창조 안에 새겨진 질서와 조화
창조는 무질서한 집합이 아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물과 땅을 갈라 놓으셨다. 각각의 생물에게는 알맞은 자리가 주어졌고, 계절과 날씨 속에는 균형이 세워졌다. 질서와 조화 속에서 창조는 완성되었다. 인간 역시 이 질서 속에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경작하고 다스리라는 청지기의 사명을 주셨다. 그러나 다스림은 착취가 아니라 보살핌이다.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인간의 오만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오늘날 환경의 위기와 사회적 불균형은 단순한 시대적 문제가 아니라, 창조의 질서를 거스른 인간의 결과다. 하나님은 창조의 신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를 이미 보여 주셨다.
자유와 책임, 그리고 첫 시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러나 그 자유는 제약 없는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자유였다. 선악과 앞에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유를 확인해야 했지만, 불순종을 택했다. 타락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 없는 자유를 선택한 결과였다. 그 순간 자유는 더 이상 자유가 아니었고, 죄와 두려움의 속박이 되었다. 이 첫 시험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반복된다. 인간은 하나님을 벗어나 스스로 주인이 되려 하지만, 그 끝은 늘 상실과 고독이다. 참된 자유는 하나님을 떠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한다.
상처 속에서도 이어지는 창조의 목적
그러나 인간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멈추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 가인이 죄를 범했을 때도 하나님은 그에게 표를 주어 보호하셨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하나님은 다시 무지개로 언약을 세우셨다. 인간의 죄는 창조를 파괴했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이루셨다. 창조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죄가 깊을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풍성하게 드러난다. 상처 속에서조차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꺾이지 않는다.
오늘의 인간에게 주는 창조의 의미
오늘 우리는 여전히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현대의 과학은 인간의 물질적 기원을 어느 정도 설명하지만, 존재의 의미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단순히 우연한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인간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새롭게 발견한다. 창조의 신비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근거다. 우리는 그분의 손길 속에서 살아가며, 매일의 호흡과 관계, 일상의 작은 순간조차 창조의 연장선 위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침내 드러날 새 창조
성경은 창세기의 시작에서 요한계시록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마지막 날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다. 창조는 이미 주어진 시작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약속이다. 인간의 역사는 단순한 순환이 아니라 창조에서 새 창조로 향하는 여정이다. 지금 우리가 묻는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창조주의 품에서 왔고, 창조주의 품으로 돌아간다. 이 사실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가장 분명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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