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플 때도 하나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신다

질병은 육체에 오는 것이지만 삶 전체를 뒤흔든다. 한 번의 진단으로 일상이 바뀌고 한 가지 증상으로 모든 계획이 멈춘다. 병은 몸을 약하게 하지만 동시에 생각을 무겁게 만든다. 낫는다는 보장이 없을 때 사람은 점점 침묵하게 된다. 병은 통증만이 아니라 고립과 불안의 감정까지 불러온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일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고 건강했던 시간이 멀게 느껴진다. 병은 몸만 흔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질문하게 만든다. 그 질문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이 있다.

성경은 병든 사람을 주변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병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드러난다. 날 때부터 맹인된 자를 보고 제자들이 물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대답하셨다.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타나기 위함이라고. 병이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오해를 예수는 분명히 끊으셨다. 그 말씀 이후로 병든 사람은 더 이상 수치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병든 자의 원인을 따지기보다 병든 자의 곁에 서시는 분이다.

예수는 병든 자들을 피해가지 않으셨다. 오히려 찾아가셨고 얼굴을 들게 하셨고 손을 얹으셨다. 병을 고치는 일은 단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증거였다. 병든 자는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복음을 가장 먼저 경험한 자였다. 하나님은 병을 통해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임재를 드러내셨다. 육신의 회복보다 앞선 것은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병은 치유를 통해 해결되기도 하지만 더 깊은 위로는 하나님이 그 자리에 계시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다. 하나님은 요브에게 고통의 원인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 앞에서 요브는 고통의 이유보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더 크게 보게 되었다. 몸이 회복되지 않아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 고통은 절망이 되지 않는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다는 믿음은 아픔을 견디게 만든다. 하나님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때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져도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

많은 이들이 병 앞에서 기도한다. 간절하게 낫기를 구하고 믿음으로 치유를 기대한다. 어떤 이들은 회복을 경험하고 어떤 이들은 그 기도 속에서 더 깊은 인내를 배운다. 모두가 낫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병을 통해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라 병든 자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는 분이다. 믿음은 낫는 것에만 있지 않다. 믿음은 낫지 않았을 때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고 고백할 수 있을 때 자라난다. 하나님은 아픈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가장 약한 자리에 은혜를 먼저 보내신다.

공동체는 병든 사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건강한 사람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병든 사람은 치유의 대상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대상이다. 그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과 함께 침묵할 수 있을 때 교회는 복음을 말할 수 있다. 몸이 약해질수록 마음은 더 민감해진다. 말 한마디가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작은 무관심이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병든 자를 소외시키는 공동체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약한 자를 향해 함께 울 수 있는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병은 인간의 죄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깨어진 질서 안에서 생겨난 현실이다. 고통은 죄책감의 결과가 아니라 구원을 기다리는 자리일 수 있다. 하나님은 그 깨어진 현실을 회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자리에 오신 분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온몸이 상하셨고 죽음 앞에서 고통을 당하셨다. 하나님은 고통을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으셨다. 고통을 몸소 겪으심으로 우리를 위로하신다. 병든 자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가장 먼저 찾아가신 자였다.

몸이 아픈 사람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약함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오히려 복이 된다. 하나님은 강한 자를 통해 일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의지하는 자를 통해 일하신다. 병이 고쳐지지 않았어도 믿음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역사하신다. 믿음은 결과에 의지하지 않는다. 믿음은 하나님이 여전히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멀리 계신 것 같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신다.

하나님은 병든 사람을 고치시는 분이시며 병든 사람과 함께하시는 분이시며 병든 사람을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병이 낫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손길이 없는 것이 아니다. 병이 깊어졌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멀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 몸이 아플 때 하나님은 더 가까이 오신다. 그분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고통의 자리에 함께 계신 분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 병든 몸 위에 하나님의 손이 얹혀 있다. 그것이 우리가 붙드는 복음이다

고통은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긴 시간이다. 아프다는 것은 하루가 아니라 수많은 밤을 뜻한다. 병은 기다림을 요구한다. 정확한 진단을 기다리고 치료를 기다리고 회복을 기다린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기다림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언제까지 이 고통이 계속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 때 믿음은 점점 조용해진다. 기도는 짧아지고 감사는 멀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조용한 시간 속에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 기다림이 길어진다고 하나님의 뜻이 멀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내려놓을 때 더 분명하게 다가오신다.

신앙은 고통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끈이다. 병든 자는 그 끈을 누구보다 단단히 붙들고 있다. 그는 바라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버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손이 여전히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복음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예수는 병든 자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미셨고 먼저 다가가셨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지만 예수는 그의 상태를 아셨고 눈을 맞추셨고 그의 신음까지 들으셨다. 병든 자가 회복된 것이 기적인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찾아오신 하나님이 기적이다.

삶의 계획은 고통 앞에서 멈추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고통을 통과한다. 우리는 낫는 것을 기적이라 부르지만 하나님은 인내를 통해 더 깊은 믿음을 빚어내신다. 병이 길어질수록 믿음도 견딜 힘을 잃어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약한 자 안에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신다. 믿음은 항상 외적인 증거로 측정되지 않는다. 조용한 순종 안에도 하나님의 일이 자라고 있다. 고통을 견디는 시간은 하나님의 임재가 뿌리내리는 시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붙들고 계신다.

복음은 병든 자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은 병든 자를 불러 세우고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아들이라 너는 내 딸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고. 병이 깊어졌다고 하나님이 멀어지신 것이 아니고 기도가 짧아졌다고 하나님이 응답을 멈추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응답보다 함께하심으로 먼저 다가오시는 분이다. 그분은 언제나 병든 자의 이름을 아시고 그 이름을 부르신다. 하나님은 병든 몸에 손을 얹으시고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머무르신다. 그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행이다.

신앙은 모든 병이 나아야만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병 가운데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함께하는지를 통해 공동체의 믿음이 드러난다. 우리는 치유의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낫지 않은 자를 정죄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병든 자는 사역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가 함께 품고 배워야 할 믿음의 본보기다. 고통 속에서 드리는 한 마디의 기도는 수많은 말보다 무겁고 병든 몸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 어떤 찬양보다 순결하다. 하나님은 그 예배를 기뻐하신다.

교회는 병든 자와 함께 걷는 길을 배워야 한다. 병의 크기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병든 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의 자리에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병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그 안에서 자라나는 믿음은 공동체 전체를 깨운다. 건강한 사람이 잊고 있는 복음의 본질을 병든 자는 더 깊이 붙들고 있다. 우리가 회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육체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서는 일이다. 병든 자는 그 자리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이다.

성경은 병든 자를 하나님의 일하심의 통로로 기록한다. 치유는 기적이지만 치유되지 않은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선하다. 병으로 인해 멈춘 삶은 멈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다시 쓰이는 삶이다. 하나님은 그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신다. 고통의 시간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복음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약해지지 않는다. 병은 몸을 흔들 수 있어도 하나님의 언약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 언약을 붙들고 살아간다.

믿음이 병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병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한다면 그 믿음은 살아 있다. 하나님은 병든 자를 통해 여전히 일하시며 고통의 자리에서조차 은혜를 흘려보내신다. 하나님은 절망을 끝으로 삼지 않으시고 고통을 통로로 바꾸시는 분이다. 우리는 낫는 것을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함께하심으로 이미 응답하고 계신다. 몸이 아픈 날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고 그 선하심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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