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미루지 않는 삶, 순종은 타이밍이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말씀을 실천하는 데에는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일마다 설교를 듣고, 새벽예배나 큐티를 빠지지 않는 이들도 막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삶에 적용할 때에는 “조금 더 준비되면”, “형편이 되면”, “마음이 정리되면”이라는 조건을 붙인다.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댄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언제나 ‘지금’이며, ‘곧바로’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머뭇거리는 순간, 믿음은 생각보다 빠르게 멀어진다.

성경 속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즉시’ 움직인 자들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노아가 그랬으며, 예수님의 제자들도 ‘곧’ 배를 버리고 따랐다. 이들은 말씀의 무게를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보다 신뢰가 먼저였고, 손익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확실했기 때문에 미루지 않았다. 순종은 때를 놓치면 그 의미가 변질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은 오늘을 위한 것이지, 언젠가를 위한 여유 메시지가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머리로 동의하고, 마음으로 감동하며, 발로 따르는 전인격적 반응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실체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은혜’라는 단어에 익숙하지만, ‘즉각적인 순종’에는 익숙하지 않다. 감동은 넘치지만 행동은 뒤따르지 않고, 말씀을 되뇌지만 삶의 방식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고 공부하느라 지치지만, 실천하지 않아 정작 변화는 경험하지 못한다. 그 간극은 결국 ‘타이밍의 순종’이 결여된 데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시지만, 늘 같은 방식으로 기회를 주시지는 않는다. 한 번 지나간 타이밍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우리가 미룬 만큼 그 기회를 놓친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출애굽기의 모세도 처음부터 순종의 사람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부르셨을 때, 모세는 여러 이유로 자신이 부적합하다고 말한다. 언변이 부족하고, 백성들이 믿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과거가 장애물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가라”고 말씀하신다. 준비의 완성보다, 말씀에 대한 응답의 시급성을 강조하신 것이다. 모세는 결국 순종했고, 그 즉각적인 움직임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그가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모두 맞춘 뒤에 움직였다면, 그 사명은 다른 이에게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비슷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계속해서 들려온다. 어떤 사람은 용서하라는 마음을 받는다. 그러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사람은 지금 기도하라는 감동을 받지만, 일 끝나고 하겠다고 미룬다. 또 어떤 이는 헌신이나 봉사를 요청받지만, 직장이 안정된 후에 하겠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나의 타이밍’이 아니라 ‘하나님의 타이밍’에 반응해야만 온전한 순종이 된다.

‘내일’은 우리에게 보장된 시간이 아니다. 야고보서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한다. 오늘 말씀을 듣고도 내일로 미루는 삶은, 그 말씀이 생명을 바꾸는 능력으로 작동되기 전에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는 것과 같다. 순종은 반드시 ‘지금’이어야 한다. 그것이 말씀의 권위에 응답하는 유일한 자세다.

말씀을 삶에 적용한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삶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맞춤은 생각이나 계획보다 먼저, 순간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향해 용서를 결정하고, 시간을 떼어 기도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하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직을 택하고, 삶의 여유가 없더라도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내 것을 나누는 순간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선택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즉각적 순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많은 성도들이 “언젠가는 말씀대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언젠가’는 우리의 결단 없이는 오지 않는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히브리서 3:15). 지금이 바로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바란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결정적인 하나는 ‘즉각적인 순종’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은 받지만, 행동은 미룬다 그리고 그 미룸이 습관이 되면, 결국은 신앙이 이론이 되는 비극이 찾아온다. 하나님은 단순히 감동받은 사람을 찾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즉시 일어나는 사람’을 찾으신다.

예수님의 비유 중 하나인 두 아들의 이야기(마태복음 21장 28~31절)를 보자.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했을 때, 한 아들은 “예”라고 말하고 가지 않았고, 다른 아들은 처음엔 거절했지만 결국 가서 일했다. 예수님은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했느냐고 물으셨고, 제자들은 당연히 ‘두 번째 아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짧은 이야기에서 우리는 단순한 언어의 순종보다 실제적인 행동의 순종이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진리를 본다. 말이 아닌 삶으로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다.

실제로 우리의 신앙은 ‘다음 주’, ‘다음 달’, ‘언젠가’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에 따라 방향이 정해진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도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대개 ‘환경이 아직 안 되어서’, ‘좀 더 준비가 필요해서’, ‘지금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순간이 바로 ‘가장 알맞은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준비보다 더 정확한 타이밍으로 역사하신다.

삶 속에서 순종의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 실제적인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이는 ‘지금이 아니면 용서를 전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을 감지한다 전화기를 들고 마음을 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막상 용서의 말을 건넨 그 순간부터 삶이 달라진다. 또 어떤 이는 오랫동안 망설였던 전도를 갑자기 결심하고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그 연락을 받은 사람은 우울증으로 생을 정리하려던 바로 그날이었다. 순종은 때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선택이 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

성경 속 한나의 기도도 타이밍의 순종을 보여준다. 자식이 없어 마음이 고통스러웠던 한나는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기도했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자녀가 태어나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한다. 이 서원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었다. 그녀는 사무엘을 낳고, 젖을 뗀 뒤 진짜로 성전에서 엘리 제사장에게 아들을 맡긴다. 수년간 기다려 얻은 아들을, 지체 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이 순종은 인간적인 계산이나 유예 없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 순종에 응답하셨고,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사사요 선지자로 쓰임받게 된다. 한나의 즉각적인 순종은 단순히 한 가정의 기적이 아닌, 한 민족의 영적 전환점이 된 것이다.

반대로, 순종을 미루었을 때 발생한 결과도 성경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땅을 정탐하고도 믿음 없이 두려움에 빠져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약속의 땅 진입을 유보하시고 광야에서 40년을 더 돌게 하셨다. 단 한 번의 불순종, 단 한 순간의 믿음 없음이 수십 년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들은 하나님이 원하셨던 ‘지금’의 타이밍을 거절했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순종은 우리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순종은 항상 ‘삶의 장면’ 위에 구현되어야 한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는 자리에서, 감정을 다루는 상황에서, 순종은 선택되거나 미뤄진다. 하나님은 말씀이 머무는 사람보다, 말씀이 흘러가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감동받는 것은 은혜이지만,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것은 ‘능력’이 된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은 말씀을 실천하기 어려운 수많은 이유를 제공한다. 업무, 육아, 건강, 인간관계, 재정 문제 등 현실은 늘 말씀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앙이란 바로 그 현실 속에서도 말씀을 앞세우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 선택은 대단한 헌신이 아닐 수 있다. 용서를 결심하는 작은 용기, 바쁘더라도 말씀을 묵상하는 짧은 시간,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단순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선택들이 모일 때, 하나님은 그 삶을 통로로 삼아 역사하신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시간’이라는 자원을 맡은 청지기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선다 말씀을 듣고 흘려보낼지, 아니면 오늘 바로 그 말씀대로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자리다. 예수님은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와 같다”고 하셨다. 폭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인생은 탁월한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바로 행동으로 옮긴 그 신앙의 습관에서 비롯된다.

이 글을 읽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순간일 수 있다.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순종의 결정을 지금 할 수는 없을까. 용서하지 못한 누군가를 떠올린다면 지금 기도하자. 오래 잊고 있었던 봉사의 자리를 기억한다면 오늘 연락해보자. 내가 먼저 손 내밀어야 할 이웃이 있다면 메시지를 보내자. 내 삶의 시간 속에서 말씀을 살아내는 결단, 그 타이밍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준비시키신다. 우리는 그 부르심 앞에서 지금 응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기 때문이다.

매일말씀저널 | 말씀과 삶

PHP Code Snippets Powered By : XYZScripts.com
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