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혼란 속에 휘말려 있다. 전 세계는 전쟁과 경제 위기 도덕적 혼란 기후 재난과 같은 다양한 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과학과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점점 더 텅 비어간다. 빠르게 흐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정보의 시대가 아니라 불확실성과 피로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어떤 이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어떤 이는 무감각 속에 현실을 외면한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자는 다르다. 우리는 이 혼란을 단순한 재난이나 우연한 시대적 흐름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시간표 안에서 지금 이 세상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때가 올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마지막 때에 대한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고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 이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나 지정학적 갈등을 넘어서는 예언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만들어낼 구조적 붕괴와 인간 중심 세계관이 초래할 필연적 결과를 말씀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예언의 중심부를 통과하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모순이다. 세계는 연결되었지만 사람들은 고립되었고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더 궁핍해졌다. 기술은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공동체는 점점 해체되고 있다.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것들 속에서 인간다움은 퇴색되어가고 삶은 점점 피로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질문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에 대해 우발적으로 대응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을 아시는 분이며 역사 전체를 그의 섭리 안에 두신다. 예언은 단순한 예측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따라 이루어지는 현실의 지도와 같다. 하나님은 경고하셨고 동시에 구원의 길도 함께 보여주셨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대한 경고로 가득한 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망의 책이다. 그 안에는 멸망뿐 아니라 구속과 회복 하나님의 통치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은 단지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예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영적 분별력을 주는 계시이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확실한 약속이다. 하나님은 결코 갑자기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항상 말씀을 통해 먼저 경고하시고 준비할 시간을 주신다.
우리는 이 모든 징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여전히 말씀하고 계심을 깨달아야 한다. 고난과 혼란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그의 앞으로 돌이키려는 적극적 개입이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정치 경제 사회의 위기가 아니라 영적 위기이며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서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한 해답을 제공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세상은 흔들리고 제도는 무너지고 사람의 계획은 무력해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에도 진리였고 지금도 진리이며 앞으로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기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위에 다시 서야 한다.
이 시대는 분명 어두워지고 있다. 하지만 빛은 어둠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빛이다. 우리가 그것을 붙들 때 비로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 이는 단지 신념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약속이다.
흔들리는 시대 속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우리는 명백히 이전과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전 세계는 예측 불가능한 속도로 요동치고 있고 어느 한 지역의 위기는 곧 전 지구적 충격으로 번진다. 한 나라의 전쟁은 세계 경제를 흔들고 한 도시의 전염병은 세계인의 일상을 마비시킨다. 연대는 약화되고 분열은 일상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자신만의 안전을 위해 더 높은 울타리를 쌓는다.
이런 시대 속에서 성도는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가. 단지 불안을 버티는 사람인가 아니면 분별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인가. 오늘날 교회는 ‘생존’이 아닌 ‘소명’의 자리로 다시 서야 한다. 예언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이 현실 안에서 성도는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먼저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세상은 위기 앞에서 두려움과 불신으로 반응하지만 성도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불안의 흐름을 따르지 않게 한다.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무조건 낙관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현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몫을 감당하라는 부르심이다.
기도와 말씀 그것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가장 기본적이고 강력한 무기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소식을 접하지만 기도 없는 분석은 결국 두려움에 머물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는다. 지금과 같은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깊이 말씀을 붙들고 더 절실하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흐름을 막으라고 하시지 않는다. 대신 그 속에서 길을 비추는 사람 생명을 나누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시대가 어두울수록 빛은 더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성도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분별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넘어서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겉으로는 같은 사건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뉴스보다 먼저 말씀을 읽고 여론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영적 민감함이며 이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향 감각이다.
또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서야 한다. 지금의 위기는 개인만으로는 견딜 수 없는 구조적 혼란이다. 성도는 각자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함께 몸을 이루는 존재다. 교회는 단순히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보여주는 작은 모형이다. 고립이 만연한 시대에 교회는 다시 ‘함께 있음’의 신앙적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
이 시대는 우리로 하여금 질문하게 한다. “당신은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세상은 불안을 팔고 정답을 모호하게 만들지만 말씀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목숨을 걸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 그러나 영원한 것을 붙든 사람은 일시적인 흔들림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나침반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과 자신을 다시 보고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성경은 말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그 말씀은 경고이면서 동시에 약속이다.
이 시대는 결코 우리를 삼킬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이 시대를 먼저 보셨고 먼저 말씀하셨으며 먼저 길을 밝히셨기 때문이다. 성도는 그 말씀 위에 서는 사람이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밀려와도 말씀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확신이며 또한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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