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우리를 멈추게 한다
현대 사회는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 그러나 병은 여전히 인간을 붙잡는다. 병실은 비어 있지 않고 약국의 진열대는 점점 길어지는데도 아픈 사람은 줄어들지 않는다. 몸의 병뿐 아니라 마음의 병도 그렇다. 관계가 무너지고 삶의 기대가 무너질 때 사람은 눈에 보이는 상처보다 더 깊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흔히 병을 개인의 불행이나 관리 부족으로 치부하지만 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다. 병은 우리를 멈추게 하고 멈춘 자리에서 우리는 자신과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아픔이 길어질수록 질문은 깊어진다.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신가. 내가 겪는 이 고난은 단순히 운이 나빠서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새롭게 빚어 가시는 과정일까. 신앙은 바로 이 질문 속에서 시작된다.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시선
성경은 병과 상처를 단순히 저주나 죄의 결과로 설명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맹인된 이를 두고 제자들은 죄 때문이라고 단정했지만,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병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수 있다.
혈루증 여인은 열두 해 동안 고통 속에 살았다. 많은 의사에게 재산을 허비했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녀의 병은 단순히 몸을 약하게 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고립시켰다. 그러나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을 때 그녀는 단순히 치유만 받은 것이 아니라, “딸아”라는 부름을 받았다. 병은 그녀를 사회에서 밀어냈지만, 예수님은 그 병을 통해 그녀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세우셨다.
레위기의 나병 환자 역시 몸의 병 때문에 사회에서 격리되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다. 제사를 드림으로 그들은 공동체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병은 고립으로 끝나지 않았고, 하나님은 반드시 회복의 길을 준비하셨다.
회복은 치유를 넘어선다
우리는 흔히 회복을 흔적 없는 치유로만 생각한다. 병이 완전히 사라지고 상처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성경이 보여 주는 회복은 훨씬 깊다. 바울은 평생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았다. 세 번이나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셨다. 대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을 주셨다. 바울은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복은 단순히 병의 사라짐이 아니라, 병을 안은 채로도 하나님 안에서 새 힘을 얻는 것이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고백했다. 병은 여전히 그와 함께 있었지만, 그 병이 그의 신앙을 깊게 하고 속사람을 새롭게 했다. 그러므로 회복은 건강의 회복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고 삶의 의미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성품은 고난 속에서 드러난다
병과 상처는 우리를 낮춘다. 스스로 설 수 없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이다. 하나님은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고통을 통해 우리를 붙들며, 더 이상 우리의 힘으로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게 하신다. 상처는 절망의 흔적이 아니라 은혜의 흔적이 된다. 우리가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음을 말하면서도, 그 흔적은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길을 걷게 하는 증거가 된다.
공동체 안에서 경험하는 회복
성경은 회복을 개인의 문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나병 환자가 공동체 밖으로 격리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은, 병과 상처가 공동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은, 회복이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도로 함께 이뤄진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교회는 병과 상처를 감추는 곳이 아니라 드러내고 함께 울며 기도하는 자리여야 한다. 공동체가 함께 짊어질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개인을 세우고, 개인의 믿음을 통해 공동체를 새롭게 하신다.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소망
병은 우리의 몸을 약하게 하고 상처는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버려두지 않으신다. 계시록은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사망도 고통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한다. 지금 우리의 회복은 불완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불완전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끝내 완전한 회복으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단순히 치유의 요청을 넘어 이렇게 이어져야 한다.
“주님, 병과 상처 속에서도 주님을 더 깊이 만나게 하소서. 회복은 치유가 끝나는 지점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다시 일어서는 시작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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