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생명

떠남,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되다

떠남은 언제나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이다 익숙한 자리를 떠날 때 마음은 흔들리고, 남겨진 것은 늘 불안이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 떠남은 끝이 아니라 부르심이다 하나님은 늘 사람을 불러내신다 아브라함을 고향에서, 모세를 광야에서, 제자들을 어부의 자리에서 불러내셨다. 떠남은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떠나야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리를 본다 머물러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세계가, 걸음을 내딛을 때 서서히 드러난다.

인간의 마지막 떠남, 죽음의 문턱에서

죽음은 인간의 마지막 떠남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귀향이다. 모든 생명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의 숨결이 머물러 있다. 인간이 떠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시편 기자가 “주께서 홀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한 이유는 바로 그 확신 때문이다 그는 삶의 위기 속에서도 눕고 잘 수 있었다 죽음의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아계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의 정착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아무리 안정된 집을 지어도 마음은 늘 어딘가로 향한다 인간의 본능은 머물고 싶지만 영혼은 고향을 향해 나아간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심으신 순례자의 본능이다 인간의 역사 전체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여정이라면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완성이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존재

밤하늘을 올려다본 시편 8편의 시인은 이렇게 묻는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 물음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별과 하늘의 질서 속에서 인간은 먼지처럼 작지만, 하나님은 그 먼지를 기억하신다. 창조의 위대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인간을 잊지 않으신다 죽음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듯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 새 질서를 세우신다 우리가 사라지는 자리에 하나님은 새 생명을 일으키신다 그것이 부활이다.

부활, 완성된 창조의 새 날

부활은 단지 죽음 이후의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를 완성하시는 방식이다 창세기의 빛이 어둠을 가르듯 부활은 죽음의 밤을 찢고 새 날을 연다. 그때 인간은 비로소 창조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흙으로 빚으셨지만, 그 흙 속에 영원을 담으셨다. 죽음은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지만, 부활은 그 흙에서 다시 일어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이 흙에서 생명을 빚으셨다면, 그분은 흙에서 다시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다. 죽음의 끝은 곧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새로운 시작이다.

천국, 모든 떠남이 끝나는 자리

천국은 고통이 없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자리다. 이 땅에서의 모든 여정은 결국 그분의 품으로 향한다 누구나 떠나야 하고, 누구나 돌아가야 한다. 천국은 그 돌아감의 완성이다 그곳에서는 더 이상 이별이 없고, 두려움도 없다 인간의 시간은 멈추지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새롭게 움직인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다시 만남을 허락하시고,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키신다. 우리가 ‘영원히 산다’는 말은 끝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완전한 관계가 회복된다는 뜻이다.

지금, 부활의 삶을 연습하는 사람들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믿음이다. 믿음의 사람은 이미 이 땅에서 부활의 삶을 산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잃은 자리에서도 다시 사랑한다. 하나님이 죽음을 넘어 생명을 일으키셨다면 그분은 오늘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시고, 잃어버린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하루의 끝에서 평안히 눕는 사람은 이미 부활의 신앙을 사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루의 끝도, 생의 끝도 모두 하나님의 품 안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떠남과 정착의 신비

떠남은 인간의 몫이지만, 정착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향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머무를 자리를 준비하신다. 그분의 품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다 인간의 발은 흙 위를 걸으나, 영혼은 빛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은 우리가 딛는 모든 땅을 약속의 자리로 바꾸신다 떠남이 있어야 정착이 있고, 정착이 있어야 다시 떠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환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새 하늘과 새 땅, 영원의 시작

부활 이후의 세계, 하나님의 창조는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세상을 한 번 창조하시고 손을 떼지 않으셨다. 창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 완성은 부활 이후의 세계에서 드러난다. 인간의 죽음이 창조의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단락의 시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빚으셨지만 그 흙 속에 영원을 심으셨다 부활은 하나님이 그 영원을 다시 깨우시는 사건이다 죽음이 닫힌 문처럼 보이지만 그 문 뒤에는 다시 빛이 스며든다. 하나님의 창조는 멈춘 적이 없다 인간의 시간은 멈추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흘러가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부활의 세계에서는 흙이 썩지 않고 시간은 늙지 않는다 그곳은 우리가 아는 공간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차원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가 지금 느끼는 그리움과 아름다움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곳이다 우리가 여기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랑, 기쁨, 평화는 그 영원한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그림자를 따라가며 빛의 근원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늘의 나라, 완전한 관계의 회복

천국은 고통이 없는 세계가 아니라 관계가 회복된 세계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그 단절이 모든 고통의 근원이었다 부활의 완성은 그 단절이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모든 관계가 제자리를 찾는다 사랑은 불완전함을 벗고 완전해지며, 이해받지 못한 삶의 시간들이 새로운 의미로 연결된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단 하나의 사실이 모든 결핍을 채운다.

시편의 다윗은 밤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 고백은 단지 경탄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노래였다. 그는 자신이 먼지 같은 존재임을 알았으나, 동시에 그 먼지를 영광으로 감싸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시기에 인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잊혀질 때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신다.

새 하늘과 새 땅, 회복의 마지막 장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더라.” 이 구절은 단순한 미래 예언이 아니라 창조의 완성 선언이다. 하나님은 낡은 것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썩은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다 이 땅의 모든 아픔, 실패, 불의조차도 그분의 손 안에서 새 질서로 재편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파괴의 결과가 아니라 회복의 절정이다.

거기서는 눈물이 닦이고, 고통의 흔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슬픔이 사라진 세상이 아니라 모든 눈물이 의미를 얻는 세상이다. 인간의 고통이 무의미하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구속되고 재창조된다. 우리가 겪은 상실과 실패조차도 그분의 이야기 안에서는 찬양의 재료가 된다.

영원의 질서 속에 사는 현재의 사람들

부활과 천국은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시선이다. 우리는 이미 영원의 일부를 살고 있다. 믿음은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현재로 불러오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오늘을 천국처럼 산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무너진 자를 일으키며, 자신에게 맡겨진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일 속에서 영원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천국을 미리 맛보게 하신다 그것이 성령의 사역이다. 성령은 영원의 숨결이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 속에도,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이미 스며 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도 새 하늘과 새 땅의 조각을 본다.

인간의 끝, 하나님의 시작

죽음은 인간의 끝이지만, 하나님의 시작이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하여 새 생명을 일으키신다 무덤은 끝이 아니라 씨앗의 자리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인간의 생도 그렇게 흩어지고 부서져야 영원 속에서 다시 세워진다 우리의 눈에는 끝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잉태다.

신앙의 사람은 이 진리를 믿는다. 그래서 그는 두려움 속에서도 평안을 가진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주께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신다.” 다윗의 이 고백은 단순한 위로의 문장이 아니라 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의 태도다.

하나님의 나라,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모든 떠남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 하나님은 역사의 마지막을 새로운 창조의 첫 장으로 바꾸신다 그날에는 모든 이름이 새로워지고 인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던 사랑이 완전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걸어온 길의 끝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떠남은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정착은 하나님의 품이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활의 빛이 이미 그 어둠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여전히 창조하시고 여전히 생명을 불어넣으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오늘도 걸어간다. 어둠 속에서도 빛을 향해, 떠남 속에서도 정착을 향해, 끝처럼 보이는 자리에서도 다시 시작되는 생명을 향해.

매일말씀저널 |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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