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고난 이해, 고통 속의 부르심 (4)

부활의 아침, 고난을 지나 만나는 하나님의 응답

고난은 짧지 않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지나가지 않고, 종종 우리의 일상 전체를 삼켜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믿음으로 견디고자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기도는 응답되지 않으며, 마음의 무게는 점점 더 깊어진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고난이 덜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해서 그 고난의 시간이 단축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오히려 더 길고 더 깊게 우리를 통과한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의 시간이 끝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은 하나님의 응답을 향한 하나의 문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절망의 절정이었지만, 부활은 그 고난의 결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제자들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던 부활의 아침은 하나님의 대답이었다. 인간이 할 수 없었던 모든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그것이 부활이었다.

부활은 고난을 지우지 않는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몸에 상처를 지닌 채 나타나셨다. 도마는 그 손과 옆구리에 난 흔적을 보며 비로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 고난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구속의 증거가 되었다. 예수님의 고난은 그분의 승리의 일부였고, 고난을 지나온 신앙은 이전보다 더 깊어진다.

하나님은 고난을 피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게 하시는 분이다. 성경 속 인물들을 보면 그 사실이 분명해진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리고 감옥에까지 떨어졌지만, 그 고난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이끄는 과정이 되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며 자신을 부인해야 했고,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도 오랜 시간 사울에게 쫓기며 도망자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은 하나님이 그들을 다듬고 훈련시키는 시간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응답은 그 고난을 통해 드러났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고난은 단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는 자리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이며, 하나님의 침묵이 가장 크게 들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동시에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계시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편 34편은 말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고난의 시간은 단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분과 깊이 만나는 시간이다.

많은 신자들이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혹은 자신의 신앙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이런 고난이 오는가?”,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것인가?”, “내 기도가 부족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마음을 두드린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고난은 신앙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의 기회일 수 있다고. 베드로전서 1장 7절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의 고난은 값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다듬어지는 시간이다.

부활은 단지 예수님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신자의 삶에서도 반복된다. 우리는 절망을 지나고, 관계의 죽음을 경험하고, 인생의 끝자락에 서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신다. 그것은 상황의 극적인 반전일 수도 있고, 내면의 평안이라는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때로는 고난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시는 은혜로, 때로는 고통을 딛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가온다. 하나님은 결코 고난 속에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부활로 응답하시는 분이다.

신자는 그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위로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약속이고, 신자의 삶에 실현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지나가되, 부활을 소망하며 걷는다. 하나님의 침묵은 결코 무관심이 아니며, 하나님의 때는 결코 늦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고난 속에 있어도, 하나님은 이미 부활의 아침을 준비하고 계신다.

고난 속에서 신자는 언제나 질문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은 정말 나를 보고 계신가?” 이 질문은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하나님께 여전히 마음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언제나 즉각적인 대답을 주시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난은 오래 지속되고, 응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믿음은 그 침묵 속에서 자란다. 응답이 없는데도 기다리는 믿음, 기적이 보이지 않는데도 주를 붙드는 인내, 바로 거기서 신자의 믿음은 단단해진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그의 고난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나는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그는 세 번이나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그 고난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머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그를 변하게 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고난을 제거해야 할 저주로 보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자리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신비주의가 아니다. 바울은 언제나 현실 속에서 사역했고, 그가 받는 고통은 실제적이었다. 배고픔, 매맞음, 모욕, 불안, 배신. 그러나 그는 그 모든 현실을 뚫고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다. 응답은 고난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시편 기자 역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신자는 고난을 피해가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다.

신자는 ‘회복’을 단지 상황의 역전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의 변화, 마음의 평안, 새로운 시야의 열림으로도 온다. 시편 기자는 “내가 여호와를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고백하며, 이어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다”고 노래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상황에서 꺼내시기도 하고, 때로는 상황은 그대로 두시되 우리의 발을 반석 위에 놓으신다. 고난은 그대로인데, 그 고난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고, 그 속에서 걷는 걸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며, 부활의 능력이다.

현대의 교회는 너무 쉽게 부활을 노래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부활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한 후에야 온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을 말할 때 고난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을 지운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긴 것이다. 이긴다는 것은 정면으로 마주했다는 뜻이다. 신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부활의 삶은 현실의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통과하면서도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여정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작은 부활’을 경험한다. 절망 가운데서 다시 일어나는 힘, 눈물 뒤에 찾아오는 위로, 죽은 것 같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 낭비된 것 같았던 시간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는 변화. 이 모든 것은 부활의 연장선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난 속의 신자들에게 응답하신다. 그리고 그 응답은 때로 말이 아니라, 상황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임재 그 자체다.

부활의 아침은 어둠의 밤을 통과한 자만이 맞을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러 무덤에 간 새벽, 그것은 어둠 속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 눈물이 가득했던 그 새벽, 절망뿐이었던 그 자리에 주님이 계셨다. 그 만남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고, 그녀는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다. 신자에게도 이러한 새벽이 있다. 깊은 고난의 끝자락, 눈물과 침묵뿐이던 자리에서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고난은 부활의 반대가 아니다. 고난은 부활로 이끄는 통로다. 신자의 눈에는 그 사실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고난 중에도 부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새벽을 향해 걷는 순례자들이며, 하나님은 그 길의 끝에서 우리를 만나실 것이다. 고난은 끝나고, 응답은 올 것이며,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

매일말씀저널 | 기획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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