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축복인가, 성경이 말하는 고난의 본질
현대 교회에서 ‘고난’이라는 주제는 자주 다뤄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여전히 분열적인 질문이다. 어떤 설교는 고난을 단순한 시험이나 훈련으로 설명하고, 또 다른 설교는 고난을 믿음의 결핍이나 하나님의 징계로 해석한다. 반대로, 고난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여 축복이라 말하는 흐름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고난은 그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며, 성경은 고난을 결코 단순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을 통과하는 삶의 깊이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믿음의 정수가 드러난다.
우리는 흔히 고난을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고통은 불편하고, 실패는 창피하며, 상실은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을 단지 ‘회피해야 할 재앙’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일종의 ‘부르심’이며, 그분이 개입하시는 자리다. 애굽의 억압 속에 있던 이스라엘의 신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셨고,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의 눈물 속에서 새로운 언약의 싹을 틔우셨다. 성경의 하나님은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고난 속으로 들어오시며, 고난 속에서 일하신다.
사도 바울은 고난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고난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 바울에게 고난은 단순한 감내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자의 내면을 새롭게 빚어가시는 과정이었다. 이는 고난을 낭만화하거나 미화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자는 초대다.
성경은 고난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때로는 훈련으로, 때로는 징계로, 또 때로는 불가해한 하나님의 섭리로 제시된다. 욥기의 고난은 의문 그 자체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신다. 대신 하나님의 크심을 보여주시고, 욥은 결국 자신의 이해를 내려놓는다. 이것은 고난이 항상 인간의 도덕적 실패나 신앙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낸다. 세상에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존재하고, 믿음의 길을 걷는 자도 고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국 고난은 신자의 믿음을 벼리는 불과 같다. 그 불은 우리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련시킨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분은 고난의 한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이 단지 끝이 아님을 믿는다. 그것은 시작일 수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시작되는 자리다.
고난은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은혜의 무대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경험했고, 다윗이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하나님을 노래했으며, 사도들이 투옥과 핍박 속에서 부르짖었던 그 순간들, 그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상처 입은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부러진 심령을 가까이 하신다. 우리의 삶이 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는 법을 배운다.
오늘날의 신자는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순히 지나가는 시련으로 여기기보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신앙의 본질은 상황의 좋고 나쁨에 있지 않다. 오히려 상황을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더 깊은 임재의 통로일 수 있다. 그렇게 고난은 하나님의 이야기 안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우리는 고난을 좋아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빚어지는 은혜는 외면할 수 없다. 신자의 삶은 고난을 면제받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이다. 고난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세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쓰는 새로운 시작의 문장이다.
욥의 고난, 침묵 속에 남겨진 신자의 믿음
욥기는 고난의 신학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이다. 부유하고 경건했던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고, 병으로 육체까지 망가진다. 그의 고통은 외적인 손실을 넘어, 삶의 의미와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욥기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힘을 가진다. 그것은 믿음이 깊었던 자에게도 고난은 찾아오며, 그 고난이 반드시 죄에 대한 대가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욥의 고난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시작된다. 그는 잘못이 없었다. 하나님도 욥을 향해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고난은 그를 덮쳤고, 하나님은 그 원인을 설명하지 않으셨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고난에 대한 단순한 인과론적 신앙의 한계를 보게 된다. “잘하면 복을 받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도식은 욥 앞에서 무너진다.
욥의 세 친구는 전통적 신학을 붙든다. 그들은 고난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욥의 죄를 추론하고, 회개하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옳지 않다고 책망하신다. 욥의 고난은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책은, 고난의 원인을 쉽게 단정하려는 태도 자체가 신앙의 교만일 수 있음을 경고한다. 우리가 감히 하나님의 뜻을 모두 알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 자리에 서려는 것이다.
욥기의 절정은 그 어떤 해답도 아닌, 하나님의 등장이다. 폭풍 속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신다. 대신 피조물로서의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신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기 38:4)는 하나님의 질문은, 고난의 비밀을 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함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욥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다. 그의 기도는 불만과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항변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직한 절규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고, 자신을 변호하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도 그분을 붙든다. 이것이 신자의 믿음이다. 이해할 수 없어도, 설명할 수 없어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는 것. 욥의 신앙은 감정 없는 인내가 아니라, 하나님께 던지는 정직한 질문 안에 담긴 충성이다.
현대의 많은 신자들도 욥과 같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삶의 무게는 점점 커지고,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더 자주 찾아온다. 그러나 욥기는 말한다. 그 순간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이 드러나는 시간이며, 하나님의 깊은 뜻이 감춰진 자리일 수 있다고.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다음에 갖는 태도가 아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알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대는 것이다. 욥은 고난의 순간에 하나님을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그분을 떠나지 않았다. 욥의 고백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이것이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욥기 19:25). 고난이 그를 덮고 있지만, 구속자는 살아 계시다는 이 믿음이야말로 욥기의 중심이다. 그는 고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욥의 마지막 장면은 단순한 회복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고난은 과거의 것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그는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지만, 진정한 복은 더 깊은 하나님을 알게 된 데 있다. 그는 이제 고난 없는 신자가 아니라, 고난을 통과한 신자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내 종 욥’이라 부르신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던 이에게 주어진 가장 깊은 칭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에게 욥은 거울이다. 고난의 깊이는 그 자체로 설명되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믿음이 있다는 것.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우리가 침묵 속에 있을 때조차 그분의 손은 쉬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신앙은 질문을 허용하는 용기이며, 그 질문 끝에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겸손이다.
고난의 때는 언제나 어렵고, 그 의미를 곧바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욥처럼 그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기대는 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 음성은 모든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확신을 안겨준다. 욥은 그 확신으로 살았고, 그 신앙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았다. 오늘 우리도 그러한 믿음을 간직할 수 있다면,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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